[JERIReport] 사교육비 줄여야 노후 걱정 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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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지난 6년간 미 국립고령화연구소와 유엔의 지원하에 23개국의 경제학자와 인구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국민이전계정(National Transfer Account) 구축을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일환으로 지난 15~6일 이틀간 개최된 제5회 국민이전계정 국제세미나와 워크숍(성균관대 BK21 경제사업단 유치)이 열렸다. 아래는 한국에 관한 연구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국민이전계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전계정은 소비, 지출 등 나라 경제의 주요 흐름을 연령별로 파악해 세대 간 혹은 연령 집단 간 자원의 흐름을 파악하는 새로운 접근방법이다. 특히 한 개인의 소득과 소비가 전 생애를 통해 연령대별로 어떻게 변화하는가가 주 관심사다.

우선 소비부터 보자(그림 1). 한국인의 소비는 4세 이후 급격히 늘어나 10대 후반(19세)에 최고점에 이른 후 40대 초반까지 완만히 감소하다가 그 후 다시 다소 증가한다. 그러다가 60세 이후에야 다시 감소한다. 어렸을 때의 소비를 주도하는 건 교육비다. 그래서 4세부터 소비가 늘어나 10대 후반에 정점에 이르는 것은 유아 교육으로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육비 지출이 대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40대 초반 이후 소비가 다시 늘어나는 것은 이때부터 건강 관련 소비가 급히 늘어나서다. 60세 이후에 소비가 줄어드는 건 일자리를 잃은 후의 소득 감소가 결정적이다.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벌이와 씀씀이가 등락을 거듭한다. 그래서 소위 ‘생애주기 흑자(lifecycle surplus)’ 또는 ‘생애주기 적자’가 발생한다. 한국인은 25세부터 57세까지는 벌이가 씀씀이보다 많다. 그래서 생애주기 흑자를 시현한다. 반면 유년부터 24세까지 그리고 58세부터는 노동소득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해 생애주기 적자가 발생한다. 생애주기 전환기인 25세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가 대학을 졸업할 나이인데 이때부터 자신이 벌어서 자신이 쓰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생애주기 흑자가 적자로 돌아서는 58세는 평균 퇴직연령과 유사한 나이다. 일을 놓게 되면 자신의 소비를 자신의 노동소득으로 충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생애주기의 수지를 결정짓는 것은 일자리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이다.

살면서 겪게 되는 생애주기 적자는 어떻게든 메워진다. 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자산의 재배분(저축과 자산소득 그리고 신용)과 경제주체 간의 이전(가족 등을 통한 사적 이전과 국가에 의한 공적 이전)이 있다.

우리의 경우, 소비와 소득의 차이는 자산 재배분보다는 이전에 의해 메워진다(그림 2). 즉 쓸 돈이 모자라면 남이나 정부(이전소득)에 의존하고, 돈이 남으면 주로 남에게 준다(이전지출)는 얘기다. 그만큼 저축을 통한 자산 축적 등으로 적자를 메우는 일이 흔치 않다는 얘기다. 이전의 구성도 동양권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거의 모든 나이에서 사적 이전이 공적 이전보다 비중이 더 크다(그림 3). 노부모와 같이 사는 건 줄어들고 있지만, 대신 돈으로 부모 봉양은 계속한다는 해석이다. 이 현상은 동일한 문화권인 대만에서도 관찰되는데 공적 이전의 역할이 큰 서양 문화권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한편 유년층에 대한 이전이 고령층에 대한 이전보다 상당히 크다. 특히 사적 이전은 그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선진국과는 달리 가구의 소비 우선순위가 교육에 두어지고 있고, 정부 역시 정책의 우선순위를 노후 보장보다 교육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이전계정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18개국을 보면, 평균적인 생애주기 적자 및 흑자의 유형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라에 따라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미국·우루과이·스웨덴·일본·핀란드·오스트리아 등 공적연금이 성숙되어 있어 급여지출이 많거나 노인에 대한 공적 건강보험과 장기요양제도를 시행 중인 나라들은 노년기의 생애주기 적자가 한국보다 상당히 크다. 한국도 향후 국민연금이 성숙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고, 또 장기요양보험 등이 도입되면서 노인층의 소비수준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에 따라 한국의 노년기 생애주기 적자도 더욱 커지게 된다. 따라서 향후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노인에 대한 공적 이전이 자녀에 의한 사적 이전을 어느 정도 줄어들게 할 것인가 하는 게 관심거리다.

한국은 1988년 이후 저축이 지속적으로 감소함에 따라 자산소득의 역할이 줄어들고, 또 핵가족화에 따른 나이가 든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가 줄어듦에 따라 사적 이전이 감소해 왔다. 공적 이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공적 이전의 역할을 늘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재원이 조달되어야 하는데, 그 재원 조달이 말처럼 쉽지 않다. 따라서 이전뿐 아니라 저축 등 자산을 통한 자원의 재배분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전망이다.

저축의 증가는 개인적으로는 노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적으로는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날로 그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 문제는 교육 지출, 특히 사교육에 대한 지출이다. 막대한 교육 지출 때문에 저축을 늘리기 힘들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육의 정상화는 고령화에 대비하는 핵심적 대책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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