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이타르-타스 통신 기자가 본 북한] 下. 핵문제와 에너지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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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북핵 위기'를 떠들지만 정작 평양에서는 긴장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제국주의에 대항한 투쟁에 전 인민이 나서자'는 관영 언론매체들의 요란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평양 주민들의 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다. 도시에 경찰이나 군인들의 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오후 11시쯤이면 거리는 쥐 죽은 듯 조용해지지만 이 또한 항상 있어 왔던 일이다. 오전 6시쯤 일어나 7시30분부터 8시 사이에 일터로 나가야 하는 주민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에너지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중유공급을 중단한 이후 에너지 난은 더욱 악화됐다. 이때부터 주민들의 가전 기구 사용에 대한 제한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자동차 운행 규제와 같은 행정조치도 취해졌다.

평양의 많은 지역에 온수공급이 끊겼으며 난방이 안 되는 지역도 많이 생겼다.

전기 공급이 끊어지는 바람에 트롤리버스(전기로 운행하는 버스)들이 하루에도 몇번씩 멈춰서곤 한다. 도심 여기저기에선 승객들이 멈춰선 트롤리버스에서 내려 전력이 끊어지지 않은 다음 구간까지 밀고 가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북한 정권이 원자로 재가동을 선언한 이후 주민들은 난방이나 전력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나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많은 주민은 핵시설이 군사용으로 이용된다고 믿게 됐지만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핵'에 대해 아무 말도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2월 평양에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를 지지하는 주민들의 대규모 군중집회가 열렸다. 주민들은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평양시내 가장 넓은 네 군데 광장으로 모였다.

광장 곳곳에는 반미(反美)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들이 나붙었다. 연사들은 하나같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충성과 지도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크고 작은 국경일에 평양 시내에서 열린 노동자 집회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연설이 반복됐다. 북한의 관영 대중매체들도 앞서서 긴장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긴장감은 없지만 핵은 북한 주민의 일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현안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북한 핵시설에 대해 잘 모른다. 얼마 전까지 평양 주민들은 북한에 핵발전소가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했다.

주민들은 "그런 소문이 있긴 한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모두가 핵발전소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러나 핵시설들이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모르고 있다.

정리=유철종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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