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시위로 시민 내쫓긴 '시민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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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서울시청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열린 민중대회에 참가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오후 4시20분.(上)). 남대문과 광화문에 이르는 곳곳에서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몸싸움이 벌어졌다(4시50분.(中)). 집회를 마친 시위대가 차도로 행진하면서 시위대와 차량이 뒤엉켜 있다(5시50분.(下)). 이날 시위로 시내 도로에는 저녁 늦게까지 극심한 교통정체가 빚어졌다.안성식.조문규 기자, [연합뉴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평소 일요일이면 2만 명 이상의 시민이 나들이를 즐기는 곳이다. 하지만 11일 오후 이곳에서 시민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민 휴식 광장이 텅빈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이날 오후 3시30분 열리는 이른바 '범국민 행동의 날' 집회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시민들의 출입을 봉쇄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광장 경계선에 전경버스 300여 대를 투입, 한 치의 틈도 없이 차로 벽을 세웠다.

같은 시간 서울시청~남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16차로의 태평로에는 차량 대신 시위대로 가득 찼다. 올해 열린 집회 중 가장 많은 2만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경찰의 차 벽 앞에서 집회를 강행한 뒤 종로와 청계천 일대를 행진하며 경찰과 충돌한 뒤 오후 8시 자진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 60여 명과 경찰 12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쳤다.

경찰의 금지통보를 무시한 이날 불법 집회로 도심 교통은 쑥대밭이 됐다.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왔다. 경찰이 도심 안쪽으로 통하는 대로를 모두 차단함에 따라 도심으로 진입하려던 차량은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차를 돌려야 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상황실은 "도심 대부분의 구간이 시속 20km 미만의 정체 상태가 계속됐다"고 설명했다.

서울 무교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친구 딸 돌찬치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딸(2)과 함께 오후 4시쯤 경기도 남양주시를 출발한 조한준(31.회사원)씨. 그는 도심에는 진입도 못한 채 10㎞쯤 떨어진 천호대로 위에서 두 시간 동안 갇혀 있었다. 조씨는 오후 6시쯤 마장동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로 광화문으로 와 식당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는 "자기 주장도 좋지만 법과 규칙을 지키지 않는데 지지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택시기사 김종회(56)씨는 "평소보다 체증이 대여섯 배는 심한 것 같다"며 "한강시민공원처럼 넓은 곳을 두고 왜 하필 도심 한복판을 고집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민사상 책임 물어야" 주장도=대다수 시민은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대형 도심집회를 고집하는 행태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우위자(27.여.자영업)씨는 "시내 쇼핑을 나왔는데 시위 때문에 망쳐버렸다"며 "대형 집회와 시위로 다른 시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에 이젠 넌더리가 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적 인식이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김일영(정치외교) 교수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슈도 없는 가운데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것은 세(勢) 과시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회 전체적으로 관행적인 불법 시위를 관용해주는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의 변철환 대변인은 "법을 어기고 거리에 뛰어들어 시위를 벌이면 그만큼 손해라는 인식이 자리잡도록 법.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등 참가 단체들은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를 정부가 유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인식.박유미.최선욱 기자

◆불법 시위의 사회.경제적 비용=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 초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여의도의 단순 집회는 회당 2억3716만원, 종로 도심 일대의 불법 시위.행진은 683억여원, 광화문 불법 점거 집회 땐 776억여원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 2005년의 경우 한 해 열린 1만1036건의 집회를 모두 불법.폭력 집회로 가정할 때 총 12조3190억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했다. 2006년 국내총생산(GDP) 806조여원의 1.53%에 이르는 수치다. 반면 이 같은 시위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경우 손실 유발액은 절반 수준인 6조원으로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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