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 김 "동생 일 모른다" 전화 끊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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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미국시간.한국시간 11일 오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베벌리힐스의 고급주택가. 전 BBK투자자문 대표 김경준(41)씨 가족의 집에는 가정부라고 밝힌 60대 여성만 있었다.

누나 에리카 김(43.미국 변호사)과 부모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 집의 문 앞에는 'For Lease'(임대 가능)라고 쓰인 팻말이 놓여 있었다. 에리카 김은 이날 LA 윌셔가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았다. 한 교민은 "김씨의 가족들은 지인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의 한국 송환이 수일 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LA에는 '폭풍 전야'와 같은 조용한 긴장이 흐르고 있다.

에리카 김은 휴대전화 통화에서 "나는 동생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짤막하게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에리카 김의 한 측근은 "그녀가 '언젠가 입장을 밝히고 싶지만 현재로선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 호송 업무의 지원 역할을 맡게 될 LA 한국 총영사관 직원들도 말을 아끼기는 마찬가지였다. 경찰 주재관인 김종량 경무관은 "송환 문제는 한국 법무부가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어 구체적인 추진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현지에선 정부의 비공개 방침에 따라 미국 측과 합의한 김씨 신병 인수 날짜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송환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총영사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와의 접촉은 주로 워싱턴DC 주미 한국대사관의 법무담당 영사가 담당하고 있다. 그는 최근에 LA공항을 돌아보며 송환 절차의 세부사항을 점검했다고 한다.

미국 교민사회에서는 12일(한국시간 13일)이 공휴일인 '베테랑스 데이(참전용사의 날)'라 김씨 송환이 예상일인 14일보다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에서도 13일이 임채진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상돼 있어 한국 법무부가 미국에서의 출발일을 14일 이후로 조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법무부 관계자는 "월요일이 휴일이지만 김씨 신병 인도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필요 인원은 근무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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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측은 한국의 변호사들을 접촉하며 사건 수임을 의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김씨 소송 업무를 담당했던 심원섭 변호사는 최근 김씨 사건에서 손을 뗀 것으로 확인됐다. 심 변호사는 전화통화에서 "지금은 김씨 사건을 맡고 있지 않다"며 "김씨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심 변호사의 언론 인터뷰 내용에 크게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변호사는 이에 대해 "그런 것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김씨 측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을 역임한 유재만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유 변호사는 "김씨 측이 지인을 통해 연락해 왔지만 사양했다"고 밝혔다.

유 변호사는 2005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재직 때 양윤재 서울시 정무부시장의 수뢰혐의 사건을 수사했다. 유 변호사는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측으로부터 "이 시장을 겨냥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공격을 받았었다.

로스앤젤레스=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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