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이명박과 함께 갈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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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11일 서울 인사동에 있는 한 떡집에서 주인과 함께 가래떡을 뽑고 있다. 강정현 기자

"그건 당 얘긴데 뭐…. 좀 봅시다."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11일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국정 동반자' 제안을 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일단 박 전 대표의 반응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의 제안에 어떤 수준으로 답할지에 따라 그의 지지율이 요동칠 수 있어 신중한 것이다. 8일 SBS 조사에선 이회창 후보 지지자 가운데 36.3%는 박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면 이회창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의 '국정 동반자' 발언을 포함해 기자회견 전체에 대해 말을 아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지지율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이명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당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선의의 경쟁자로) 함께 갈 수 있다.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흐트러지지 않게 하겠다"고 반응한 게 전부다.

그의 캠프 역시 "논평할 만큼 새로운 게 없다"(이영덕 공보팀장)고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대신 이회창 후보 측은 박 전 대표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웠다. 출마 선언 이후 이 후보 측은 "박 전 대표가 침묵만 지켜줘도 지지율 상승세가 뚜렷해질 것"이란 입장이었다. 이 후보는 "제 욕심이야 박 전 대표가 저를 지지하고 동조해 주면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날 이명박 후보가 박 전 대표에게 크게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이명박 후보가) 당헌.당규에 따르겠다는 원칙 정도만 밝혔을 뿐 새로운 게 뭐가 있느냐"며 "박 전 대표가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장고 끝에 내놓은 대책이란 게 아무런 감동도 없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측근은 "박 전 대표가 3자 정례 회동에 나설지는 몰라도 적극적으로 이명박 후보를 지원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박 전 대표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좀 기다려 보자"고 말했다.

한편 '농민의 날'인 이날 이 후보는 서울 인사동의 한 전통 떡집을 찾아 가래떡 만들기 체험을 했다. 그는 장화를 신고 앞치마를 두른 뒤 쌀 반죽을 떡 제조기에 밀어 넣으면서 직접 가래떡을 뽑아냈다. 이 후보는 기계에서 가래떡이 나오자 "내 손 깨끗하다"며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앞서 그는 인사동 길을 약 5분간 걸으면서 시민들과 가벼운 목례와 악수를 했다. 떡집까지 찾아온 지지자들에겐 직접 사인을 해 줬다.

전날 그는 30~40대 중소기업인 20여 명과 북한산에 올랐다. 등반 과정에서 주민들과 만나 "죄인이 여기 왔다. 두 번씩이나 여러분 가슴에 멍이 들게 했다"며 자세를 낮췄다. 또 "과거 정당 총재로서 안주하고 자만했다"며 "서민과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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