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란기자와도란도란] 겁없던 장세 끝물 … 위험을 관리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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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대리(代理) 장세다.” 동양종금증권 서명석 리서치센터장이 요즘 시장을 비유하는 말이다. 돈의 힘으로 주가를 밀어 올리는 유동성 장세가 아니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덧붙인 설명이다. 물론 저금리로 증시에 돈이 몰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전통적 의미의 유동성 장세는 아니란다. 교과서적으로 설명하자면 유동성 장세는 경기와 기업실적은 나쁘지만 정부의 경기부양 및 금융완화 정책에 힘입어 돈이 증시로 유입돼 주가가 오르는 국면이다. 그러나 지금은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기업들 실적도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 센터장은 ‘대리 장세’라는 표현으로 대신했다. 증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대리들은 젊고 패기가 넘친다. 크게 잃어 본 적 없으니 두려울 게 없다. 반면 산전수전 다 겪은 부장들은 이것저것 재는 게 많다. 지수가 고점을 뚫고 오르면 조정을 대비한다. 과거에도 그랬었다는 이유를 들어. 그러나 대리들에게는 비교할 과거가 없다. 거침없이 시장을 향해 돌진한다. 그 결과 지금까지는 대리들의 완승이었다.

역시 전무는 전무다. 대리들과 다르다. ‘할 줄 아는 게 주식밖에 없다’는 한국밸류자산운용 이채원 전무는 “1999년을 보는 것 같다”고 우려한다. 그때도 그랬단다. 급등하는 정보기술(IT)주의 주가를 주가수익비율(PER) 등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자 새로운 논리가 동원됐다. 현재 주가를 합리화하기 위해 그에 적합한 논리를 발견해 낸 것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시장에 낯선 주가이익증가비율(PEGR)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PER을 주당순이익(EPS) 증가율로 나눈 수치다. 이 값이 1보다 낮으면 주가 상승 속도가 주당순익증가율보다는 낮다는 뜻이다. 현재 주가가 높기는 하지만 앞으로 벌어들일 이익을 감안하면 비싼 건 아니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된다. PEGR로 계산하니 고평가 논란의 단골 종목인 동양제철화학의 PEGR은 0.5배에 불과했다. 조선주도 PER은 20∼40배 수준이지만 PEGR은 0.3∼0.5배에 그쳤다. 그러나 미래 실적을 누가 아나. PER이 높다는 것은 이미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다는 의미다. 실제보다 실적 추정치가 부풀려질 수밖에 없다.

주말 미국 뉴욕 증시가 떨어져 시장이 불안한 상황이다. 물론 한 차례 지나가는 소나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조건 오르던 대리 장세는 끝물이 아닌가 싶다. 이 전무는 “이제부터가 진정한 재테크의 시대”라고 말한다.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투자의 성패가 갈리는 세상이 오고 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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