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후보의 현란한 변신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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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호 10면

과거의 일에 대한 잘잘못을 복기(復棋)해 주는 게 판사의 주된 업이다. 31년간 판관 생활을 했던 이회창 무소속 후보는 칩거했던 지난 5년간 자신의 두 차례 대선 실패, 구체적으론 그 원인을 철저히 벤치마킹했던 것 같다. 그래서 꺼낸 대선 3수의 승부수 중 하나가 자신의 이미지를 과거 최고의 ‘기득권층(establishment)’으로부터 기존 정치의 ‘국외자(outsider)’로 바꾸려는 것이다. 변신(變身)의 전술이다.

당 총재 시절 주로 하늘색 지방시 와이셔츠에 진한 감색 정장을 입고 다녔던 그는 최근 노타이 점퍼 차림을 패션 브랜드로 택했다. 승용차도 검은색 에쿠우스에서 하늘색 카니발 승합차로 바꿨다. 33억 달러 재산의 거부였던 무소속의 로스 페로 후보가 1992년 미 대선에서 허름한 차림에 84년식 올스모빌 차를 타면서 ‘반(反)정치의 정치’를 주장해 초반 인기 몰이를 했던 장면이 연상된다.

아웃사이더로 자리매김하려는 이 후보의 메시지는 현란하다. “혈혈단신”(7일 출마 선언), “정치인들은 머리로만 소외 계층을 알고 마음으로는 이해 못한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게 내 정치 목표”(8일), “날 총재라고 부르지 말라. 우리 밖의 모든 사람이 우리 주인 ”(9일), “죄인이 여기왔다”(10일) 등 준비된 듯한 선언이 이어졌다. 건건이 한나라당과 싸우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의 동선(動線) 역시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가정 방문(8일)에 이어 이번 주에는 대구의 재래시장과 부품 회사 등 ‘서민 투어’로 이어질 것이라고 한다.

여전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25% 안팎의 기존 정치 혐오층에겐 다 솔깃할 얘기들이다. 의원수 141석인 대통합민주신당, 129석 한나라당 등 두 거대 정당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술로도 비춰진다. 이런 미묘한 구도에서 이 후보에 대한 한나라당과 신당의 무차별 십자포화가 계속 화력만큼의 타격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거꾸로 “좀 심한 것 아니냐” “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자기네들은…”이라는 역동정론을 부를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판사 시절 이한동 전 의원 등 동료들과의 포커 게임에서 상당한 승률을 기록했다는 이 후보는 이미 무수한 상황의 수읽기를 다 해봤을 터다. 이성과 논리 대신 감정과 흥분으로만 그를 주저앉히려는 상대는 서서히 그가 쳐놓은 덫에 빠져들 수도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선 이번 주부터 ‘의도적 무시’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한다.

▶지난 주
7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탈당 및 무소속 대선 출마 선언
8일 이명박-박근혜 통화=한나라당 이 후보, 박 전 대표에게 전화 걸어 12일 대구ㆍ경북 대회 참석 요청. 박 전 대표는 거절
8일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 사퇴=“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주셨으면 한다” 성명 발표
 
▶이번 주
12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국민성공대장정 대구ㆍ경북 대회(구미)
12일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대전ㆍ충남ㆍ충북 선대위 출범식(대전)
12일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 해인사 방문(합천)
17일 민주당 이인제 후보, 전국 보육인 한마당 참가(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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