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 ‘아버지 김성근을 말한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성근 SK 감독(右)과 외아들인 김정준 SK 전력분석팀장이 코나미컵이 열리고 있는 도쿄돔에서 오랜만에 다정한 이야기를 나눴다. [도쿄=임현동 JES 기자]

“아버지의 삶은 야구 그 자체입니다. 음치에다 기계치예요. 운전도 결국 포기하셨지요.” 프로야구 SK의 숙소인 도쿄돔 호텔 2324호실. 16㎜카메라, 비디오 분석장비, 노트북컴퓨터에 상대팀 경기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예리한 눈매에 짧은 머리 스타일까지 아버지 김성근(65) 감독을 빼닮은 외아들 김정준(37) SK 전력분석팀장의 방이다.

 김 팀장은 9일 “일본 주니치, 대만 퉁이의 경기 비디오와 자료는 모두 아버지가 일본 친구들한테 받아 온 것”이라며 “이 정도까지 준비해 놓으실 줄은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챔피언 감독으로 금의환향=김 팀장은 “코나미 컵에서 일본 챔피언 주니치를 꺾은 것은 아버지의 한(恨)을 푼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재일동포 출신인 김 감독에게 일본은 태어난 고향이지만 막노동을 하다 사고로 일찍 사망한 부친으로 인해 겪은 가난과 차별의 아픔을 안겨준 곳이다.

 “할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다 사고로 일찍 돌아가셨대요. 성공해서 당당히 일본에 돌아오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었어요.”

그러나 김 감독은 자신의 과거사를 자식들에게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김 팀장은 “아버지는 자식에게도 힘들고, 못한다는 것을 내비치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 일에 완벽을 추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자식들은 실망도 했다.

 “일 년에 딱 세 번 집에 왔던 때도 있어요. 누나, 여동생과 저(1남2녀)의 입학·졸업·생일을 챙기신 적은 거의 없죠. 제가 충암고-연세대에서 야구 선수를 했지만 제가 야구하는 것을 보러 온 적도 없었어요.”

 오히려 훈련시간이 부족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한밤중이라도 쉬고 있는 아들을 끌고 연습을 시키고야 마는 독종 코치였다.

 김 팀장은 “제 결혼식 때 아버지는 LG 2군 감독이셨어요. 그날도 오전 훈련을 다 시킨 뒤 겨우 시간에 맞춰 식장에 도착했을 정도”라며 웃었다.

 ◆면허도 못 딴 기계치=김 팀장이 아버지에게도 빈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함께 차를 타는 경우도 없는데 어느 날 김 감독이 우연히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 말수가 적은 아버지에게 “라디오라도 틀어 달라”고 하자 김 감독은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상대팀 전력분석용으로 사놓은 비디오도 키고 끄는 정도만 할 줄 알았지 제대로 활용도 못하는 ‘기계치’라는 사실에 오히려 당황했다고 한다. “운전면허 따는 것도 결국 포기하셨다”며 “그래도 이제 아들이 많이 편해졌는지 ‘못한다’는 말을 한 것 아니겠냐”며 웃었다.

 ◆서로 도울 수 있어 행복=부자가 한 팀에서 같이 지내는 것은 2002년 LG 시절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LG 때는 김 감독이 구단 사장과 마찰로 물러나자 김 팀장도 사표를 내고 SK로 옮겨왔다. 김 팀장은 “부자가 함께 있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바로 곁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건 행복”이라고 말했다. 해외 출장 때면 아버지가 필요로 하는 미국·일본의 야구 서적을 사 모으는 일도 아들인 김 팀장의 일이다. 김 감독과 김 팀장의 집에는 야구 이론서와 야구 잡지가 800권이 넘는다.

 그러나 야구가 없는 날 함께 식사할 때를 빼고 야구장에서 직접 마주칠 일은 드물다. 김 팀장이 만든 분석자료는 감독을 거치지 않고 담당 코치나 선수에게 직접 전달된다.

 “아버지가 가끔 구단 기록원을 통해 가공하지 않은 원 자료(raw data)를 달라고 할 때가 있다”며 “아버지는 직접 손으로 수첩에 정리하고 머리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도쿄=김종문 기자 , 사진=임현동 JES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