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제3후보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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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공화·민주 양당 정치가 확립된 미국에서도 제3후보가 위력을 떨치곤 한다. 미 대선에 네 차례나 출마한 랠프 네이더는 원래 민주당 진영이었다. 환경·인권 운동가인 네이더는 2000년 대선에서 2.7%(288만 표)를 득표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칠 때였다. 고어는 간발의 차이로 분패했다. 민주당 진영에선 ‘스포일러(spoiler·방해 입후보자)’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공화당도 92년 대선 때 제3후보의 피해자였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재선을 꿈꾸다 텍사스 출신의 억만장자 로스 페로에게 일격을 당했다. 페로는 공화당 표밭을 잠식해 18.9%를 얻었다. 페로가 없었다면 당시 46세인 빌 클린턴의 당선은 어려웠을지 모른다.

한 달 뒤 한국 대선에서도 제3후보론이 떴다. 김영삼(YS)·김대중(DJ) 후보의 대결 무대에 정주영·박찬종 후보가 뛰어든 것이다. 현대그룹의 조직력과 ‘경제’ 이미지를 업은 정 후보는 16.1%(388만 표)를 얻었다. DJ(득표율 33.4%)보다 YS(41.4%)의 표를 잠식했다. 동교동계 인사는 “선거 막판 DJ가 금고에서 ‘신안군 농협’ 발행 수표까지 꺼내 쓰면서 사력을 다했지만 10% 이상의 격차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3당 합당을 통해 일찌감치 호남 포위 구도를 만든 YS의 지지층이 견고했다는 방증이다.

DJ는 5년 뒤 DJP(김대중+김종필) 공조와 제3후보인 ‘이인제 효과’에 힘입어 3전4기에 성공했다.

정치판에서 ‘선거 구도는 선거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격언이 있다. 같은 편을 묶고 반대편을 갈라놓는 게 승리의 절대 요체라는 얘기다. 그러나 각국 선거에서 민의를 왜곡할 수 있는 제3후보의 출현은 끊이지 않는다. 테드 할스테드와 마이클 린드는 『정치의 미래』에서 “정보화 시대에 양산되는 수많은 이슈가 기존 정당·선거 제도를 뒤흔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에는 7일 현재 이회창 무소속 후보를 포함해 139명의 대선 예비후보들이 등록했다. 그중 몇 명이 25∼26일 선거 기탁금 5억원을 내고 본선에 나갈지는 미지수다.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의 소진(蘇秦)은 최강자 진(秦)에 맞서는 합종책(合縱策)을 유세하면서 ‘닭 부리가 될지언정 차라리 쇠꼬리는 되지 말라’고 약소국 제후들을 설득했다. 예나 지금이나 쇠꼬리 신세를 싫어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양수 정치부문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