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美대선 이후 한·미동맹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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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한.미동맹 관계에 적잖은 변화를 초래할 정치적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물론 미국 대선이 한.미관계를 하루아침에 바꿔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중장기적으로 한.미동맹은 주한미군 배치를 포함해 커다란 구조조정을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미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존 케리.하워드 딘을 비롯한 4명이다. 이들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국제 테러조직의 뿌리를 뽑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문제에 대해선 민주당 후보들은 부시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한다. 민주당은 미국이 제2차 걸프전을 일으키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할 만큼 이라크가 중요했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물론 민주당도 핵무기 확산 차단을 환영한다. 민주당은 이란이 최근 자국의 핵시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한 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같은 이유로 이들은 지난해 12월 리비아가 핵개발을 포기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민주당 후보들은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는 외교적으로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부시 대통령이 주창한 선제공격론에 찬성하지 않는다. 자연 민주당은 부시 대통령이 선포한 악의 축(이란.이라크.북한)이 미국의 군사적 목표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 직관에 따르면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새로 등장한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는 다소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인물이 될 것이다. 또 민주당 대통령은 한.미동맹에도 새로운 접근을 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것은 평양의 태도에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만일 김정일이 지금처럼 핵과 미사일 등 케케묵은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경우 민주당 대통령도 부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김정일 길들이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스라엘.파키스탄.인도처럼 극도로 '조용한 핵개발'을 추진할 경우에도 민주당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목표로 삼을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만일 북한의 체제 붕괴라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공화당.민주당 대통령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김정일 정권이 내부 균열을 일으켜 정권이 붕괴하고 북한이 소련식 개방에 나서거나 마오쩌둥(毛澤東) 이후의 중국처럼 시장 자본주의의 길로 나선다면 말이다.

짐작컨대 급변 상황 발생시 누가 백악관 주인이냐에 따라 미국의 대응방식은 사뭇 다를 수 있다. 민주당 대통령이라면 이 문제를 주로 경제적.외교적, 그리고 동북아 세력군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볼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 대통령은 점진적인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철수를 시도할 공산이 있다. 그 결과 지난 50년간 유지돼 온 '인계철선' 개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또 민주당 대통령은 육군을 철수시키고 주로 공군과 해군을 통해 미국의 국익을 지키려 할 것이다.

반면 공화당 대통령은 군사적 카드를 중시할 것이다. 그는 전쟁발발 방지를 위한 억제력과 신속한 군사적 대응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미군 주둔 쪽을 선호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공화당 대통령은 미군 철수를 선호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다.

마치 이라크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사회가 분열돼 있는 것처럼 한국 사회도 안보문제를 둘러싸고 분열돼 있다. 한국에 미국의 대선 결과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인 것처럼 미국에도 한국의 선거결과는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 대선을 비롯한 국내 정치적 변화가 한.미 동맹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라는 점이다. 서울과 워싱턴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하고 상대국의 선거와 그에 따르는 정치.안보적 파장을 면밀히 살피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게리 클라이드 허프바우어 국제경제연구소(IIE) 선임연구원
정리=최원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