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5위의 반란' 이끈 주장 김기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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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프로축구 포스트시즌의 화제는 단연 ‘철의 사나이’들이다.

포항의 주장 김기동은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K-리그 425번째 경기였다. 426번째 경기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포항=정영재 기자]

정규리그 5위인 포항 스틸러스가 포스트시즌에서 4위 경남 FC, 3위 울산 현대, 2위 수원 삼성을 연파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더니 1차전에서 1위 성남 일화마저 3-1로 격파했다. 가히 ‘포항발 태풍’이다.

11일 2차전에서 한 골 차로만 져도 15년 만에 정상에 오르게 된다. 만일 그렇게 되면 프로축구연맹은 또 한 차례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다. ‘정규리그 5위가 우승하는 제도는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포항 돌풍의 중심에 ‘아이언 맨’ 김기동(35)이 있다. 그는 4일 성남전까지 K-리그 425경기를 뛰었다. 골키퍼 김병지(서울·465경기)를 빼고 필드 플레이어로는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워나가고 있다. 1m71cm·68kg의 왜소한 체구, 충남 당진의 신평고를 졸업한 무명 선수가 한국 프로축구의 새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5일 포항공대 안의 포스코 국제관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포항 돌풍의 진원지로 파리아스 감독을 꼽았다.

“감독님이 처음 오셔서 연습 경기를 할 때 백패스를 절대 못하게 했어요. 수비에 둘러싸여도 무조건 돌파하거나 전진 패스를 하라는 겁니다. 그게 보는 사람은 재밌을지 몰라도 선수는 죽을 맛이거든요.”
 한국 선수들의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 위한 파리아스의 강수였다.

  김기동은 파리아스를 “매우 똑똑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파리아스는 신예들에게 기회를 주면서도 베테랑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았다. 주장인 김기동에게는 경기 중에 선수의 위치 선정과 전진·후퇴를 지시할 수 있는 전권을 줬다.

 김기동은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휴일에는 무조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바른생활 선생님’ 때문에 브라질 선수를 포함한 포항 선수들의 생활습관도 가정 중심으로 변했다”고 전했다.

김기동은 장수 비결을 묻자 “담배와 술을 하지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냈다. 시즌이 끝나면 소주 3병도 마시지만 시즌 중에는 맥주 두 잔 이상 마시지 않고 늦어도 오후 11시에 자서 오전 7시 반에는 꼭 일어난다고 했다.

1991년 포항에 입단한 김기동은 2년 동안 한 경기도 못 뛰고 부천(현 제주)으로 이적했다. 부천에서 니폼니시 감독을 만나 기술 축구에 눈을 떴고, 2002년까지 주전으로 뛰었다. 2003년 ‘친정’으로 돌아와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프로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우승컵에 입맞추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세 시즌을 더 뛰어 500경기를 채우는 게 그의 목표다.

김기동은 인터뷰 장소에 벤츠를 몰고 왔다. 4층 빌딩의 주인이고, 당진에 땅도 꽤 있다고 한다. 그는 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성실하게 몸관리를 하고 알뜰하게 돈을 모으면 알부자가 될 수 있음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포항=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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