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호감’까지 파는 21세기형 스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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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 03면

도대체 ‘이 언니’의 정체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호텔 체인 힐튼호텔 가문의 상속녀이자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녀인 동시에 문제아,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스타이면서 또한 가장 동경하는 스타이기도 하다는 패리스 힐튼(26).

내한하는 ‘무개념 상속녀’ 패리스 힐튼

언젠가부터 ‘된장녀’ 담론과 함께 한국 언론에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보도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다음 주 뜬금없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오래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나 뭐라나. 이유야 어쨌건 현실감 느껴지지 않던 ‘21세기형 공주님’을 직접 구경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들썩이고 있는 모양이다.

패리스 힐튼의 정체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단, 돈 많은 ‘무개념 백치미’의 전형이라는 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부자들의 생활에 대한 관음증과 질투, ‘뒷담화 욕구’를 동시에 해결한다. 2003년 폭스TV에서 방송된 리얼리티 쇼 ‘심플 라이프’가 대표적이다.

패리스 힐튼이 가수 라이오넬 리치의 딸인 니콜 리치와 함께 미국 전역을 돌며 ‘평민’들의 생활을 경험한다는 내용의 이 프로는 철없는 공주님들의 내면을 까발려 인기를 끌었다. 공주님은 수백만원짜리 지미 추 구두를 신고 농장 일을 하다 더러워지면 쓰레기통에 버린다. 시체 화장하는 일을 돕다 뼛가루가 바닥에 흩어지면 피식 웃으며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인다.

방송과 맞물려 공개된 섹스비디오, 그룹 백스트리트보이스의 멤버 닉 카터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를 비롯한 스타들과의 계속된 염문, “토니 블레어가 누구예요?”로 대표되는 무식 발언들도 패리스 힐튼을 ‘가장 짜증나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 보면 이 여자, 그렇게 만만치 않다. 어떤 행동이 사람들을 가장 ‘발끈하게 하는지’, 언론을 벌떼처럼 몰려들게 만드는지 알아내는 능력이 가위 천재적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돈과 연결시킨다. 전 남자친구와의 섹스비디오가 공개될 위기에 처하자 아예 이를 DVD로 제작해 판매해버리는 모습을 보라.

그리고 자신은 방송에 나와 “그때 너무 철이 없었다”며 ‘성적으로 자유분방하지만 악의는 없는’ 부잣집 아가씨를 연기했다. 포브스지 추산에 따르면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각종 상품의 로열티를 제외하고 쇼 프로그램과 CF 출연만으로 2005~2006년에 그가 벌어들인 돈이 약 700만 달러(약 65억원).

지난 6월 음주운전으로 옥살이를 한 그는 출소 후 “그동안의 내 삶은 공허했다”며 돌연 르완다로 봉사활동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그 모습도 TV 리얼리티 쇼로 방송할 예정이라고 하니 이제 그의 삶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쇼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할 지경이다.

‘가십의 달인’답게 패리스 힐튼은 서울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화젯거리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힐튼호텔’에 묵지 않고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하얏트호텔’에 묵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여러 방송이 그를 출연시키기 위해 혈안이 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패리스 힐튼의 방한 소식을 누구보다 반가워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이 아닐는지. ‘공인’이라는 책임감에 눌려 마음대로 사치도 도박도, 음주운전도, 연애도 못한다고 요즘 한참 불평이 많은 한국의 연예인들과 재벌 2세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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