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군인들이 내 소설을 즐겨 읽는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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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북한 김정일 위원장 측근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최근 북한 군인들이 내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합디다. ”

 전 세계에 3억 명 이상의 독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무협소설 작가 김용(金庸·83·중국명 진융·사진)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인터뷰 내내 활기가 넘쳐 흘렀다. 중국 현대 대중문학의 ‘살아있는 신화’로 불리는 그를 홍콩 밍허(明河)출판사에서 만났다.

 중국 저장성(浙江省) 출신인 그는 1959년 홍콩에서 일간신문 명보(明報)를 창간한 뒤 독자를 잡기 위해 무협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건에 절묘한 상상력을 결합해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명보의 사장 겸 주필로 오랫동안 사설을 써 오면서 정치평론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중국 고전에 불교, 유교 등 중국 전통문화를 녹여낸 그의 작품은 하버드대에서 중국학 교재로 쓰였다. 대중성이 뛰어나 1980년 중국대륙에 처음 소개된 그의 작품은 1억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대표작인 『사조 삼부곡』 중 『신조협려전』은 다섯 차례나 TV시리즈로도 제작됐다.

 베이징시 교육당국은 최근 고교 교과서를 개편하면서 루쉰(魯迅)의 『아큐정전(阿Q正傳)』대신 그의 무협소설을 싣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시대가 바뀌듯이 교과서의 내용도 변해야 한다”며 “내 글은 영어에서 보는 피동문을 절제하는 등 완전 중국화돼 읽기 편한 면도 있었을 것”이라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았다.

김씨와의 인터뷰는 최근 『의천도룡기』(전 8권·김영사)를 마지막으로 그의 대표작인 『사조 삼부곡』 시리즈가 국내에서 정식 출간된 것을 계기로 마련된 자리였다. 지금까지 그의 소설 가운데 상당수는 본인의 허락 없이 무단 번역돼 출판됐었다.

 그는 ‘통속소설 작가’라는 중국 일부 작가들의 지적에 대해 “요즘 많은 문학인들이 순수문학과 통속문학의 경계를 없애려 하고 있다”고 반응했다. 그러면서도 “문학에선 예술성이 상업성보다 우선해야 한다”며 “사람들이 베토벤의 작품을 즐겨 듣고 대장금 같은 드라마가 동남아에서 인기 있는 것도 그때문”이라 덧붙였다. 인종이나 국가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은 비슷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회견 중 ‘겨울연가’, ‘엽기적인 그녀’, ‘조폭 마누라’ 등을 언급하며 이영애, 송혜교 등 출연배우를 기억하는 등 ‘한류’에도 큰 관심을 내비쳤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대장금 DVD를 선사한 사실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출간된 지 50년 가까운 『사조 삼부곡』이 여전히 인기를 모으는 배경에 대해 그는 “독자들이 내 소설에서 인간의 꿈을 보았고 평화와 화합의 정신을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당나라 때 왕위 계승자들에 관한 졸업논문을 쓰고 있다. 김씨는 “50여년 동안 신문 사설과 소설, 특히 요즘 논문을 쓰면서 느낀 것은 ‘정치는 짧고 예술은 길다’는 진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홍콩=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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