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학사장교 13명 배출 필리핀 바기오 AT대학…목사·대학강사 짜고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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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대 사회교육원 경호·비서 과정 황모 교수는 학교의 공식 홈페이지처럼 꾸민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4년제 정규 대학 학위를 준다"고 선전해 학사장교 지망생을 끌어들였다.

한국인 목사가 필리핀에 세운 신학대학이 학위를 위조해 학사장교로 임관하는 통로로 이용돼 온 사실이 2일 뒤늦게 밝혀졌다. 대전지검은 돈을 받고 가짜 학위증과 졸업증명서.성적증명서 등을 발급해 준 혐의(사문서 위조 등)로 필리핀 바기오 예술신학대학(Baguio Art&Theology College) 이사장 이모(62) 목사와 경기대 사회교육원 교수 황모(48.여)씨를 지난달 18일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육군 검찰은 이들이 발급해 준 가짜 증명서를 제출한 뒤 학사장교로 임관한 현직 장교 13명의 임용을 취소하고 지난달 이들을 군사법원에 기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육군은 임관이 예정돼 있던 학사장교 50기 훈련생 8명도 같은 사유로 임용을 취소했다.

◆전문 브로커가 학위 위조=검찰과 육군에 따르면 학위와 무관한 평생교육시설인 경기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부터 경호.비서 과정을 가르쳐 온 황씨는 개인 홈페이지(www.h2bguard.com)에 "4년제 학위를 주겠다"고 선전해 학생들을 모집했다. 황씨는 이 홈페이지를 마치 대학의 공식 사이트인 것처럼 꾸며 놓고 "필리핀에 있는 국제 기독교 대학과 필리핀 사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 4년제 정규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특히 자신을 '캘리포니아 커버넌트 대학'에서 체육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필리핀 북부 루손섬의 바기오시에 있는 '예술신학대학'의 체육교육학과장을 겸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황씨는 이를 믿고 경기대 사회교육원에서 2년짜리 경호.비서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에게 1인당 5200달러씩(약 470만원)을 졸업비 명목으로 받아 챙긴 뒤 이들을 필리핀으로 보내 가짜 학위를 받아 오도록 했다.

바기오 예술신학대학은 이 목사가 설립한 학교로 "97년 필리핀 교육부로부터 정규 4년제 대학 인가를 받았다"며 국내에서 학생을 모집해 왔지만 학생이 적어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던 상태였다. 이 학교는 지난해 8월 '칼로스 MA 대학교'로 이름을 바꿨다. 검찰 관계자는 "황씨는 자신의 박사 학위도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은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황씨와 이 목사의 관계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학사장교 임용 체계에 큰 구멍=이들의 행각은 올 8월 육군 인사사령부의 학사장교 서류전형 과정에서 처음 포착됐다. 가짜 학위로 2004년 처음 임관한 장교 5명 중 2명은 이미 전역한 뒤였다. 육군 관계자는 2일 "4년제 대학 졸업자들이라고 밝힌 응시자들의 필리핀 체류기간이 1년에 불과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며 "이전에 임관된 장교들의 가짜 학위 소지 여부는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전지검은 5일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임장혁 기자

☞◆학사장교=일반 4년제 대학 졸업자가 16주 동안 3사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3년간 장교로 복무하는 제도. 재학 중 군사훈련을 받는 학군장교(ROTC)와는 다르다. 육군은 매년 소위 700여 명을 이 제도로 충원한다. 경쟁률은 1.5~2대 1 수준. 최근 청년 실업이 늘면서 학사장교를 선호하는 대학생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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