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선생님도 당당하게 평가 받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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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최근 교육부총리가 학교 교육 정상화 촉진대회에서 교사 평가에 대해 언급한 것은 교육계 수장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조치였다고 본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를 계기로 학교 교육이 되살아날 것을 기대한다. 교육은 어디까지나 교사의 손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교사의 열성에 현장 교육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도 물론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학교장이 초.중.고 교원에 대해 매년 1회 실시하고 있는 근무평정은 승진이나 자격연수.해외연수 등을 위한 참고 자료일 뿐으로, 교원 전보나 교수.학습 지도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은 거의 없다.

현행 근평제도(교육공무원 승진규정)는 해당 학교 교사의 근무성적을 '수' 20%, '우' 40%, '미' 30%, '양' 10%의 비율로 평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양'해당자에게는 승급의 제한 등 불이익 조치를 줄 수 있다고 돼 있으나, '양'의 비율은 '미'에 가산할 수 있으므로, 교사가 근평에 의해 불이익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들의 교수.학습지도 능력 및 생활지도 능력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현행 근무평가제도는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극히 일부라 하더라도 교원사회에서도 지탄을 받는 교원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학생이나 학부모들로부터 '기피교사'로 인식되고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현행 교원 평가제도는 이러한 교원들에게 직.간접적인 자극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교원이 현행 평가제도가 승진용일 뿐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교원고시'라고까지 불리는 신규 교원 임용시험을 통해 들어온 우수한 인재들이 교육 현장에서 보람을 느끼며 자기 발전에 힘쓰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합리적이고 공정한 교사 평가가 꼭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교사 평가의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목적 없는 평가는 현행 평가제도처럼 평가의 대상인 교원들의 무관심을 초래할 뿐이기 때문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에 의한 평가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평가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교사의 교수.학습지도력, 생활지도력을 강화해 학생의 학습력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교원에 대한 평가가 서열을 가리거나 인기도를 측정하는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철저하게 교사의 교육력을 극대화해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의 역량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 올리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어야 한다.

또 교원 평가가 교원의 승진이나 연수 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 위해선 객관성을 바탕으로 학교 내의 의견을 수렴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교원 스스로 부단한 자기 연찬에 노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평가의 주된 목적을 두어야 한다. 교원들이 평가의 결과를 바탕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학생지도력 향상이라는 평가의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가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제도를 개선한다면, 교원들은 누구한테도 부끄럼이 없는 당당한 태도로 평가받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직사회의 평가는 다분히 온정적인 면이 많아 서로를 감싸고 그저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이뤄진 점이 없지 않다. 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교원 평가체제의 수립은 교육계가 당면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이번 교육부총리의 결심은 많은 교사와 학부모들의 지지 속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교육은 모름지기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모든 교원이 국민의 사표로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시대의 국민의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당하고 합리적인 평가 제도가 도입될 때 학생지도력이 있는 교사들이 우대받고, 무능하고 지탄받는 교사는 스스로 물러나거나 불이익을 받는 합리적인 교단 풍토가 이루어지며, 우리의 교육은 선진화를 향한 진일보를 내디딜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제 더 이상 교원들이 소위 '철밥통'이란 부끄러운 별명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상갑 경복고 교장.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