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아는 사람이란 얘기 듣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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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약속을 지킬 때가 됐습니다. 올해 안에 자선재단을 만들겠습니다.”

남자골프 세계 10위권을 지키고 있는 ‘탱크’ 최경주(37·사진) 선수가 1일 올해 안에 자선재단을 출범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바클레이스 싱가포르 오픈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는 최 선수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목표액인 200억원을 모았다. 약속했던 대로 자선재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3년 전 200억원 벌면 자선 재단 만든다고 했고, 한 10년쯤 걸릴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계획이 앞당겨졌다.

 “그렇게 됐다. 200억 정도를 벌었다. 그때는 막연한 생각이었는데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타이거 우즈가 재단 설립한 지 10년이 됐는데 우즈가 재단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베푸는 사람이 운동할 때도 더 힘이 나고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언제 재단이 출범하나.

 “올해 안에 출범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 본부 빌딩을 물색하고 있다.”(최 선수의 매니저는 재단 출범과 관련, 이미 필 미켈슨(미국) 등 스타들의 축하메시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운동은 잘 하지만 돈만 많이 벌고 마는 운동기계 같은 스포츠 스타들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이같은 생각을 했나.

 “내 나이 이제 마흔(최경주는 호적상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두 살이 적다)이다. 의미 있게 살고 싶다. 내가 죽은 다음에 그 선수는 운동을 잘해서 먹고 싶은 것 혼자서 다 먹고 갔다는 소리보다 사랑을 알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었다.”

 -이 밖에 자선기금도 많이 내놓은 것으로 아는데.

 “정확한 규모는 모르겠다. 여러가지를 계산하고 낸 것이 아니어서 그렇다. 내가 처음에 도왔던 아이들이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했다는 편지도 받았다. 그럴 때 아주 만족한다.”

 -자선 재단의 컨셉트는 무엇인가.

 “특별한 철학같은 것은 없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후원액이 많아진다면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 본인의 성장기 환경과 관계가 있나.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별 관계도 없는데 잘 챙겨주신 고마운 분들을 보면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됐다. 명절 때 인사차 들리면 용돈을 챙겨주시던 분들을 많이 겪으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주는 사람에겐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겠지만 받는 나에겐 큰 돈이었다. 아직도 그런 분들과 연락을 하고 지낸다. 옛날 그 마음을 고목나무처럼 계속 지키고 변하지 않도록 하겠다.”

 -재단 이름은 정해졌나.

 “처음엔 가칭 ‘탱크재단’이라고 붙였는데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 같다. ‘최경주 재단’이나 ‘최경주 복지재단’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세계 랭킹 톱 10 이전과 이후에 달라질 것이 있나.

 “별로 없다. 대회에 참가하면 미국 대회든 한국 대회든 소년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승했다고 우쭐하거나 들뜨지도 않고 성적이 나쁘다고 의기소침하지 않는 성격은 축복이다.”  

싱가포르=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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