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아시아의고동>6.내수시장 공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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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메트로마닐라 시내에서는 「중형TAXI」라는 한글 표지판이 붙어있는 스텔라 택시가 종종 눈에 띈다.필리핀의 중고차 수입방침에 따라 한국에서 들여온 폐차직전의 이 택시는 의외로 인기가 높다.현지 택시란게 대부분 10~20년은 되었을 정도로 낡고 지저분한데다 차체마저 좁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와 필리핀의 솔리드그룹이 합작 생산하는 프라이드 역시 승용차와 택시로 불티나게 팔린다.필리핀의 국민차 육성방침에따라 들여온 프라이드는 지난해 소형차부문 판매 1위를 기록했다.10월부터는 베스타도 현지에서 생산한다.최근 세미녹다운(半조립)방식으로 판매를 시작한 대우 르망도 일본차보다 앞선 가격경쟁력으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역시 솔리드그룹과 합작으로 가전제품을 생산중인 삼성전자의 TV제품도 인기가 높다.세탁기도 삼성.금성.대우등 가전3사 제품이 모두 선보이고 있다.
수십년전부터 내수판매에 나선 일본에 비한다면 우리 기업의 이같은 최근 움직임은 초보단계에 불과하지만 가능성은 다른 아세안국가에 비해 크다는게 현지 진출업계의 분석이다.그동안의 정치.
치안 불안으로 일본 역시 필리핀 시장에 썩 적극 적인 입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필리핀에 자리잡은 일본 업체는 자동차가 닛산.도요타.미쓰비시등 3社,가전업체는 소니.내셔널등으로 다른 아세안 국가보다 적다.일본 소니와 한국 삼성전자를 동시에 파트너로 잡고있는 솔리드그룹의 엘레나 림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국 업체와 합작에 나섰지요.경쟁체제로 품질을 높이고 가격은 낮춰 시민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줘야 합니다.일본 전자제품은 기술을 독점하고 가격도 높았는데 한국 제품이 들어온지 불과 몇년만에 가격이 30%나 낮아졌습니다.』 15년째 마닐라에 살며 교민회 부회장직을 맡고있는 ㈜예손 金鳳一사장도 한국차(1만달러선)는 일본차(1만5천달러선)에 비해 가격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필리핀 내수시장이 호락호락한 것만은 아니다.필리핀 역시 다른 아세안 국가처럼 화교들이 재계와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사 주재원들은 따라서 현지 진출을 위해서는 화교상권의 두터운 벽을 뚫거나,아니면 이들과 연합이라도 해야 할것이라고 제시한다. ㈜대우 李政男지사장은『대만기업들처럼 우리도 화교상권과 연결돼야 할것』이라고 말한다.
아직 초기단계인 우리와 달리 일본의 최근 관심 분야는 백화점등 소매업 개방문제에 쏠려있다.당장은 외국인 투자금지 업종으로묶여있지만 필리핀 정부 지속적으로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본과 달리 백화점 진출이 당장은 어려워 우선 화교기업과의 합작등을 통해 자동차와 가전제품의 판매확대에 힘쓸 수밖에 없다.때문에 엘레나 림 회장의 충고는 참고할 점이 많다.
『한국상품이 전에는 저가였지만 이제는 아닙니다.아세안 국가에부품업체를 만들어 공급하는 일본의 소니.내셔널에 비해 한국업체는 애프터서비스와 가격경쟁에서 불리하게 될것입니다.한국은 부품업체를 아세안 국가에 진출시킬 힘이 없는 것같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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