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가난에 뿔뿔이 … '고려인 이산가족'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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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 인근 지역으로 재이주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는 고려인들의 토굴집 입구(위)와 방(아래). 땅을 3~4m 깊이로 파고 그 위에 갈대나 판자로 지붕을 얹은 토굴집에서는 한낮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인 러시아 남부 볼고그라드시에서 북쪽으로 70여km 떨어진 '볼잔카' 마을. 끝없이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 갈대와 널빤지, 비닐을 엮어 만든 초라한 움막집 10여 채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10월 19일 오후 이 마을에 들어섰다. 한 집 앞에서 한참을 소리쳐 부르자 50대 중반의 남자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농사를 짓느라 까맣게 탄 얼굴에 때묻은 낡은 군복이 잘 어울린다.

이 남자는 자신을 '세르게이 김'이라고 소개했다. 52세의 고려인 3세인 그는 사고로 한쪽 팔이 없었다.

김씨는 1995년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이곳으로 이주해 왔다. 소련이 무너지고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였다. 그는 부인, 두 아들과 딸을 남겨두고 혼자 떠나왔다. 이곳에서 매년 2ha의 농지를 빌려 토마토와 수박 농사를 짓는다.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 우리 돈으로 400만~500만원 정도를 번다. 다음해 농사를 지을 종자돈을 떼고,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이곳으로 오면서 꿈꿨던 목돈 마련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하루빨리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볼잔카 마을에서 다시 북쪽으로 70km 정도를 더 달리면 '프리모르스코예' 마을이 나온다. 들판 한쪽에 무나 감자를 저장하는 움집 같은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이 사는 땅굴집이다. 땅을 3~4m 깊이로 파고 그 위에 갈대나 판자로 지붕을 얹은 집이다. 고려인과 조선족(중국 거주 한인) 10여 가구가 여기서 토굴생활을 하고 있다.

고려인 아파나시예프 함(64)씨도 그들 중 하나. 함씨는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타지키스탄 내전(92~97년)을 피해 97년 이곳으로 왔다. 3~4평 남짓한 지하 방은 대낮인데도 냉랭한 한기가 돈다.

함씨는 부인(53)만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딸은 고향인 타지키스탄에, 아들은 우즈베키스탄에 남겨 뒀다. 함씨도 매년 2ha 정도의 땅을 빌려 토마토와 수박 농사를 짓는다. 그는 "고향이 조용해지면 돌아가려 했는데 벌써 10년이 지나 이젠 돌아가기가 힘들어졌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소련의 붕괴는 중앙아시아에서 막 삶의 터전을 잡아가던 고려인을 또다시 유랑의 길로 내몰았다. 체제 붕괴가 몰고 온 정치 혼란과 경제적 궁핍을 피해 수많은 고려인이 고향을 떠나야 했다. 타지키스탄 내전 때는 8000명에 이르는 고려인들이 주변국으로 탈출했다.

독립 이후 폐쇄 정책으로 만성적 실업과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약 5만 명의 고려인이 돈벌이를 찾아 이웃 국가들로 이주했다. '탈(脫) 우즈벡 러시'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즈벡의 경제사정이 여전히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향을 등진 고려인들이 주로 몰린 곳이 볼고그라드를 비롯한 러시아 남부와 우크라이나다. 일부는 러시아 극동의 연해주로 옮겨갔다.

현재 볼고그라드에 살고 있는 고려인(3만여 명) 중 약 8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고 이곳에서 7년째 고려인 지원 활동을 벌이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이봄철(42) 해외사업팀장이 설명했다.

이 팀장은 "그중 1000여 명이 토굴집이나 움막집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중국 옌볜 등지에서 조선족들까지 농사를 지으러 오면서 토굴 생활자가 더 많아졌다. 땅굴에서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겨울을 나고, 물이 귀해 제대로 씻지도 못하기 때문에 토굴 생활자들 중에는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궁핍한 생활 못지않게 고려인들을 괴롭히는 건 불법 체류 문제. 소련이 붕괴하면서 소련에 속했던 나라에서도 러시아로 들어오려면 비자를 받아야 한다. 도착지에선 관할 경찰서에 거주 등록도 해야 한다. 그러나 고려인들 중엔 비자나 거주 등록기간이 지나 버린 사람이 많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서류를 모두 잃어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어떤 농장주는 이런 사정을 이용해 턱없이 많은 농지 임대료를 요구한다. 현지 경찰들도 거주 등록기간이 끝나는 3개월마다 찾아와 '벌금'을 뜯어간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도 힘들다. 70년 전 강제 이주의 수난이 또다시 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볼잔카.프리모르스코예.볼고그라드

(러시아 남부)=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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