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는 살찌우고 시청자엔 짜증 유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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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가 지상파 TV의 중간 광고 허용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관련, 케이블TV 업계와 시민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방송위는 23일 전체회의를 열고 지상파TV의 중간 광고 허용을 골자로 한 ‘방송 광고제도 개선 추진 방안’을 논의했으나 의결을 보류했다.
이날 회의에선 중간 광고의 도입 필요성에 대해 일부 방송위원이 “KBS 수신료 인상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간 광고까지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방송위는 30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중간 광고 허용 문제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방송위가 중간 광고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2012년까지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해야 하는 지상파 TV의 재원 조달을 돕기 위해서다. 지상파TV 방송사들은 광고 수주 감소를 이유로 중간 광고를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이에 대해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방송위가 중간 광고 관련 정책안을 공개하지 않고 이해 당사자 의견도 듣지 않은 채 밀실 논의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중간 광고가 도입되면 지상파TV에 광고 물량을 빼앗겨 경영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협회는 지상파TV가 중간 광고를 할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약 5300억원(18%)의 광고 수주 물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협회는 24일 “지상파TV의 중간 광고 허용 논의에 앞서 방송 광고정책에 대한 대원칙이 우선 정립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방송광고제도개선 특별반’을 구성해 종합 대책을 마련하라고 방송위에 요구했다.

72개 언론·시민단체 모임인 미디어수용자자주권연대는 23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주권연대는 “중간 광고가 시청자의 시청권을 방해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지상파 방송이 재정적 어려움으로 공공성의 위기에 처했다면 시청자들이 공감할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문화연대도 22일 발표한 성명에서 “시민 사회의 논의와 토론이 없는 상태에서 중간 광고를 도입하려는 것은 시청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간 광고는 프로그램과 광고의 경계를 허물어 광고가 프로그램에 침투하는 성격이 강하다. 프로그램과 광고의 구분이 모호해지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오락화·상업화 경쟁으로 방송의 공익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1997년 이후 여러 차례 중간 광고 도입 문제가 제기됐으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중간 광고는 방송사 경영 개선을 내세워 시청자에게 짜증을 감수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승수(신문방송학과) 전북대 교수는 “지상파TV가 재정난을 이유로 중간 광고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중간 광고로 버는 돈보다 국민의 시청 습관을 강제로 변경시킴으로써 잃는 게 훨씬 많을 것”이라며 “재정이 어렵다면 먼저 경영 합리화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진용·이나리 기자

◆중간 광고=TV 프로그램 중간에 들어가는 광고. 2000년 발효된 통합 방송법에 지상파 TV의 중간 광고를 허용하기로 했다가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백지화된 바 있다. 현재 케이블TV와 위성방송에만 허용하고 있다. 다만 지상파TV도 운동경기, 문화·예술행사 등 휴식 시간이나 준비시간이 있는 프로그램엔 중간 광고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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