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도시생활>훌쩍 떠나 찾아보는 시골장터의 여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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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살이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아무때나,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나는 때때로 뭔가 바쁘게 살면서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 무작정가까운 시골장을 찾아간다.
지난달 초 나는 또 집을 나섰다.오늘은 北쪽으로 가자.방향을정한 뒤 불광동에서 시외버스를 탔다.차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와사이사이 숨어있는 맨드라미.금잔화.분꽃.들꽃이 정겹다.어렸을 적 집마당에 채송화.나팔꽃등을 심어놓고 즐기시 던 어머니를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내가 지금은 그 촌스러움이 살갑게까지 느껴지니 나도 나이가 들었나보다.
이런저런 생각끝에 어느 마을의 정류장에 내리니 점심때가 됐다.그곳 시장을 물어 찾아가 시장통을 걷다 쑥개떡과 흰고물을 탐스럽게 묻힌 인절미를 한봉지 샀다.떡을 먹으며 걷다보니 아까는주인없이 머위.호박잎 광주리만 덩그렇게 있던 자 리에 할머니 한 분이 머위줄기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어디 가셨더랬어요.』 『응,국수 한 그릇 먹고왔지.왜 사려구.』 그리고는 봉지에 인심좋게 듬뿍듬뿍 담아주신다.난 슬그머니 그 자리에 주저앉아 사온 떡봉지를 벌리고 할머니께도 권하며,풀어진 앞섶사이로 보이는 할머니의 가슴도 훔쳐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손끝이 검도록 머위줄기 껍질을 벗기고 간 간이 떡도 집어먹으며 실없는 얘기를 한참 늘어놓다 보면 이젠 집으로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흙길을 걸어나와 양말을 신고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조바심치는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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