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11.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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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선을 보거나 친척의 소개로 만난 남녀가 혼수를 적게 해왔다고부부싸움이나 하며 살다가 자식을 두엇 낳고 시름시름 한평생을 보내고는 늙어 죽어야 하는게 우리 시시한 평균치 사람들이다.
이같은 우리에게 생전에 저런 불타는 사랑을 한번쯤 해봤으면 하는 대리 경험을 한껏 시켜주는 영화가 바로 1943년 샘 우드가 제작.감독했던 영화『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였다.
아버지가 공화파 시장이어서 파시스트들에게 삭발과 집단강간을 당하곤 유격대원들에게 구출되어 산속 생활을 3개월째 한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먼)와 미국의 대학강사 출신으로 용병이 된 폭파전문가 로베르토 조던(게리 쿠퍼).
이 두 사람이 스페인 산악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벌이는 사랑은 전쟁의 울타리에 갇혀 죽음의 가능성을 눈앞에 두었기 때문에 더욱 절박하다.
그래서 미팅에서 처음 만나 디스코테크에 들러 그날밤으로 러브호텔을 찾아가는 인스턴트 사랑에나 익숙한 현대 도시인들에겐 신화처럼만 여겨지리라.
비록 50년전에 만들어진 영화이긴 하지만 사랑의 본질은 별로변한 것이 없는 모양이어서 사흘밤과 낮 동안 엮어나간 그들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감동스럽다.『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죠?』라고 걱정하며「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에게 해주 고 싶은 것들」을 열거하다가『해드릴 일이 없으면 그냥 옆에 앉아 사랑하겠다』는 마리아의 염치없이 열심히 사랑하는 모습은 옛날 우리나라 영화『촌색시』의 최은희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키스할 때는 코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사람들의 인상에 깊이 남았던 것은 부상해 기관총 한자루만 들고뒤에 남아야 하는 로베르토 조던이 마리아에게 한 마지막 대사다.『그대는 곧 나이고 나는 곧 그대며 그대가 가 는 곳에는 내가 함께 간다』는 그 말은 물론 원작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상이기 보다는 시인 존 던의 철학이다.이 영화가 처음 나왔던 시절,수업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학생들 사이에서「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말이 유행했었 지만 그것은 학교종도 아니요,사랑의 종도 아니고 죽음을 알리는 조종(弔鐘)소리였다.
〈安正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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