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口耳之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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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1898년 한 유생의 상소문중『成均館을 雜技之學의 아래에 놓아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성균관은 전통시대 대학에 해당한다.그 곳에선 講學과 尊聖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수행했다.전자가 학문전수 기능이라면 후자는 성인을 존중하기 위한 제사기능을 말한다.
조선후기에는 지식의 집적이나 학문적 업적보다 자신의 앎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실천성에 무게중심을 두었다.그래서 만인에게서 절받을 수 있는 성인을 제사지냄으로써 인생의 사표를 재확인하는 제사기능,즉 존성기능이 중요시됐던 것이다.
그러나 1894년 甲午更張으로 대변되는 근대적 제도 개혁때 기술이나 어학중심의「雜技之學」이 우선순위에 오르게 됐다는 것이다.그 이전의 학적 기초였던 인간이 어떻게 인간답게 사느냐,인간으로서의 떳떳한 도리는 무엇이냐는 인문주의가 어 떻게 외국의기술문명을 배워 풍족하게 사느냐의 과제로 바뀌고 그 도구로서의기술이나 어학이 중요교과로 부상했던 것이다.이러한 시대성을 대변하는 논리가 개화론이었다.이는 內省과 修身중심 교육에서 방법론 중심 교육으로의 질적 변화를 의 미하며 인문학의 위상변화를뜻한다. 그러한 교육으로 나타난 문제점을「口耳之學」이라고 했다.귀로 듣고 입으로 그대로 옮기는 암기위주의 배움이 여러가지 폐단을 야기한다는 것이다.여기에는 사색이나 자기성찰이 결여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 시대에 이미 문제점을 파악하고도 근대화라는 명제에 밀려 미루어 온 인간다운 삶의 지표와 이상을 세워「口耳之學」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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