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戰後배상문제-국가배상 종결로 책임회피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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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총액 8억달러,연간 3천만달러 이상의 대외지불은 우리나라의재정력으로 볼 때 너무 많아 지불이 곤란해질 위험이 많다.」 日本의 對필리핀 배상협정이 조인되었을 때의 사회당 성명이다.56년 5월9일의 일이었다.
사회당은 당시 對필리핀 배상은 너무 많다며 반대했다.
38년후 그 사회당의 당수인 총리가 마닐라를 방문,전후배상문제를 재촉받고 있다.새삼 세월의 흐름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사실 차관을 포함한 8억달러의 배상은 당시 일본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버마(現미얀마)와는 타결을 보았으나 인도네시아등에 대한 배상이 차례차례 기다리고 있었다.배상의 무게 때문에 일본이 망하지않을까하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망하지 않았다.
배상이 물자와 기술제공등을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배상이 오히려 아시아 시장에 진출하는 발판이 됐다.
일본은 50년대의 한국전쟁,60년대의 베트남전쟁을 지렛대삼아곧바로 경제부흥을 이뤄냈다.그리고 세계 국민총생산(GNP)의 약 15%를 차지하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것이다.물론 국민의 땀과 지혜의 결정이었다.
일본인의 근면성을 빼고는 오늘의 일본을 말할 수 없다.그러나시대가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運도 실력이라는 해석을 할 수도 있겠으나 세계 각국이 일본에대해 반드시 칭찬의 눈길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용케도 잘 해왔네…』라는 비아냥거림이 언제,어디에나 잠재해있다.
필리핀 배상에 대해 말하자면,필리핀이 당초 요구했던 배상액은80억달러였다.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은 배상은 役務로 지불하도록요구했으나 필리핀등은 현금을 원했다.그러나 일본이 파산해버리면본전도 못찾는다.그 타협점이 앞서 말한 배상 협정이었다.
전후 50년이란 분기점에 와서 각종 전후배상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종군위안부.강제노역.포로학대.軍票.미지급예금등 차례차례배상요구가 나와 끝이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셜군도에서는 70년대초반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액이 충분치못하다고 해 협정을 재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외무성만이 아니라국민들도『그렇다면 지금까지 정부간 협정은 무엇이었나』고 불안해할 것이다.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빚을 아무리 갚아도 다갚지 못할 것이다.강제노역에 끌려갔던 사람들이나 가족의 아픔도 필설로 다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배상이 이미 종결됐으며 청구권도 상호 포기했다는 이유로 눈을 감고 있기엔 일이 너무나도 중대하다.
전후배상이 급부상한 것은 냉전구조의 붕괴와 관계가 없지않다.
이데올로기의 봉인이 뜯겨졌음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지금까지 일본이 스스로만의 풍요로움을 너무 추구한 나머지 다른 나라의 아픔을 돌이켜보는 여유를 잃었던것은 아닐까.
종군위안부문제 하나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자료가 없다고 한후 자료가 나오니까 불완전하다고 했다가 마침내는 시간이 너무 지났다고 한다.이래가지고서야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개인배상은 국가로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있다.국가가 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을 대신하는 조치를 해야한다.국가배상에 가까운 準국가배상이란 것도 있다.무엇이 가능한지 지혜를 짜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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