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거기 그녀가 서있는걸 보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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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엄마가 다 알려구 하지 말라니까요.
특히 이 말이 인내심 많은 어머니를 결국은 열받게 만든 것 같았다.나는 말을 뱉아놓고 곧 후회하기 시작하였다.세상이란 참으로 묘한 곳이어서 진실이라고 한들 결코 소리내서 말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있는데,특히 이 점은,어른으로 커가는 아들들이 어머니들을 위해서 늘 잊지말고 있어야 할 사항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머니는 잠시 동안 어쩔줄 모르다가 체면이고 뭐고 간에 내게 삐지기로 작정하신 것 같았다.
『그래 알았어.엄마도 이젠 너한테 아무 것도 물어보지 않을 테니까…니가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상관하지 않을 테니까…그러면 너도 엄마한테 거짓말할 필요도 없을 거구….』 뭐라구 뭐라구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어머니가 내 방문을 닫고 가버렸다.
나는 배낭을 다 꾸려놓고 나서 안방으로 건너갔다.과연 어머니는안방의 창가쪽 바닥에 앉아서 훌쩍훌쩍 울고 계셨다.나는 어머니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어머니의 손을 쥐었다.
『그런게 아니라요 엄마…내 말 좀 들어보라니까.』 『됐어 이거 놔.나두…너하군 말하기도 싫어졌어.』 『엄마,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일류 대학에 떠억 붙을게.정말이라구요.그래서 엄마 친구들한테 막 자랑할 수 있게 해줄게.정말이라니까.』 어머니가반짝 고개를 들고 나를 보았다.나는 어머니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잘 알고 있는 거였다.아버지는 이런 걸 못해서 문제였다.
『너 엄마가 그말 믿어도 되는 거지.정말이지.』 『그래,이번에 갔다와서부터 공부할 계획을 다 세워놨다니까요.…나 지금 가야 돼.밤기차를 타야 새벽에 목포에서 배를 탈 수 있거든요.』『돈은…?』 『대학갈 때까지 이게 마지막 여행이라니까 엄마.』어머니가 내주는 돈을 받아쥐고 현관을 나서면서,아 나같은 놈이어떻게 일류 대학엘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니까 절로 한숨이 나왔다.
상원이와 내가 목포 선착장에서 홍도로 가는 쾌속정에 오른 게아침 여섯시께였다.
바다에는 벌써 환한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상원이와 나란히 난간에 서서,바닷바람을 손바닥으로 겨우 가리고 담배에 불을 댕겼다.담배연기는 내뿜기가 무섭게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확실한 이야길까,다꾸라는 친구 말이.』 상원이가 별로 기대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는데…이번에는 거의 틀림없는 것같아.그놈들이 처음에 만났다는 때도 들어맞는 거 같구…나이랑 생긴 거랑 주근깨 있는 거랑 다 맞거든.선희라는 이름만 윤심이로 바꿔서 부르기로 했다는 거야.』 『근데 납치한 것도 아니라구 그런다면서.』 『그건 좀 이상해.강남 뉴욕제과 뒤쪽에 물좋은 고삐리들이 꼬인다는 디스코장 많은 데 있잖아.거기서 만나서 여관에닷새 동안이나 같이 있었다는 거거든.집을 나왔다구 그러더래.그래서 실컷 데리구 놀다가 넘긴 거래.주로 이쪽 섬으로 데 려와서 팔아먹는 놈들한테 말이야.』 『그게 만약 진짜 써니라면 말이야…그런 앨 찾아서 뭐하냐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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