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시시각각

후보 단일화, 신화에서 도그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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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단일화의 국어사전적 뜻은 ‘하나로 만듦’이지만, 그 속에는 긍정적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통일’이 지고지선의 목표로 여겨지듯이, ‘단일민족’이란 말에 자부심을 느끼듯이 말이다. 더구나 1987년 대선에서 YS와 DJ가 단일화에 실패해 결국 노태우 후보에게 졌다는 아쉬움이 후보 단일화에 긍정적 의미를 더했다. 이후 대선에서 DJ와 노무현 후보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후보 단일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후보 단일화’ 대신에 ‘후보 주저앉히기’나 ‘후보 줄이기’로 표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역사가 뒤바뀌었을지 모른다.

 선거에서 상대 후보에게 돈을 주어 출마를 포기하도록 했다면 선거법상 후보 매수 행위로 처벌된다. 그런데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뒷거래는 문제가 된 적이 없다. 97년 대선에서 DJP 연합을 성사시킨 주역 중 한 사람의 설명을 들어보자. “2000원짜리 담배를 한 갑 사려는데 주머니에 1900원밖에 없었다. JP가 100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JP에게 ‘100원을 빌려 주면 담배를 사서 반 갑을 나눠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JP에게 국무총리직과 상당수 장관의 임명권·총선에서의 공천권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자신을 지지하도록 한 것은 매수가 아니란 것인가? 금전이 오가면 불법이지만 권력이 오가는 것은 매수가 아닌가? 개인 차원의 매수는 불법이지만 정당 또는 거물급 정치인 사이의 거래는 정치협상 또는 정치적 결단으로 미화될 수 있기 때문일까?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때도 ‘DJP 단일화’ 때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정씨가 노 후보에게 “당선 시 어떻게 해줄 것인지 각서를 써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게 선거전 마지막 날 지지를 철회한 큰 이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후보 단일화의 막후에서는 늘 권력 나눠 먹기의 뒷거래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범여권이 단일화에 목매는 것은 ‘후보 단일화=승리’라는 신화 때문이다. 87년과 97년, 2002년의 경험이 그런 신화를 만들었다.

 신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로 선출된 정동영 후보도 이 신화의 신봉자처럼 보인다. 그는 “후보가 되면 단일화에 나서겠다” “10월 말까지 단일화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기야 대통합민주신당이란 당명 자체가 후보 단일화를 염두에 둔 것이니 그로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무리가 따르고 있다. 단일화를 염두에 두다 보니 자신의 정책적 정체성마저 혼란이 생겼다.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에 대한 양도세·종부세 완화 입장은 어느새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아파트 원가 공개와 토지공개념 등에 부정적이었던 자세도 이제는 적극 찬성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공약에 대한 진정성마저 의심받는 형국이 됐다.

 후보 단일화의 신화가 정 후보에게는 도그마로 작용하고 있다. 단일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공약을 내놔도 무게감이 현저히 떨어진다. 최종 후보도 아니고, 그래서 지금 내놓는 공약도 범여권의 최종 공약이라고 간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지율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이 단일화 시나리오를 다 알고 있으니 단일화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다. 이제 전격성·의외성 있는 단일화 시나리오는 지지율에서 앞선 정 후보가 문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정도만 남았다.

 단일화가 의미가 있으려면 지지율을 올려야 한다. 그런데 최종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지지율이 확 올라갈 수 없다. 그게 정 후보의 딜레마다. 이 질곡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단일화의 도그마를 버리는 것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