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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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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진정(陳貞)이란 여인은 중국의 명녀(名女) 열전에 오를 만한 사람이다. 남북조 시대인 1400여 년 전 강남에 있던 진(陳) 왕실의 공주다. 고귀한 신분이었지만 성격은 소탈했다. 화려함보다는 질박함을 우선했던 진정에게 명망가의 청혼이 줄을 이었지만 모두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배필로 선택한 사람은 평범하지만 문재가 뛰어난 서덕언이라는 인물이다.

때는 바야흐로 북방의 수(隋)가 일어나던 시절이다. 양견이란 인물이 북방을 평정하고 남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강남의 마지막 왕조였던 진 나라는 곧 수에 패망했다. 금실이 좋았던 이 부부에게도 큰 변화가 인다. 패전으로 망한 나라의 왕족들은 모두 승전국의 수도인 장안으로 끌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진정은 남편과 헤어지기 전 구리 거울을 두 조각으로 나눠 하나를 남편에게 건넨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이 거울을 들고 서로 만나자”고 다짐한다. 둘은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헤어진다.

장안에 끌려간 진정은 수 왕실의 친족이자 대장군이었던 양소의 첩이 된다. 처음 맞이하는 대보름. 그녀는 하인을 저잣거리에 내보내 반쪽짜리 거울을 판다. 아주 높은 가격을 부르게 해 이를 사려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거울 한쪽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 보름이 지나고, 이듬해 보름도 그냥 넘어간다. “남편이 나를 잊은 것은 아닐까”라는 독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을 법하다.

3년째의 대보름. 해마다 같은 행동을 반복했던 하녀가 기막힌 소식을 전해온다. “길거리에 서생 차림의 한 사내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거울 반쪽을 팔고 있다”는 내용이다. “거울과 사람이 떠나갔네, 거울은 돌아왔으나 사람은 오지 않네(鏡與人俱去, 鏡歸人未歸)”라는 시구의 메모도 들고 왔다.

둘은 만난다. 수 나라 고관대작의 첩과 유랑하는 평민의 몸으로. 수의 대장군 양소라는 인물이 기특하다. 둘의 사정을 모두 듣고는 진정을 놓아준다. 오랜 기다림과 눈물이 웃음으로 변한다.

세속에서는 이혼의 절망감에 대해 “깨진 거울은 다시 합치기 어렵고, 떨어진 꽃은 가지에 오르지 못한다(破鏡不重圓, 落花難上枝)”고 표현했다. 이혼의 풍파를 보통 ‘파경’이라고 하는 유래다. 그러나 원래는 이렇게 해피 엔딩이다. 유명 연예인 부부의 이혼을 두고 다시 파경이란 단어가 입에 오르내린다. 헤어짐을 생각하는 이 시대 수많은 부부들. 파경이라는 고사에 얽혀 있는 부부 사이의 소중한 감정과 인연을 먼저 헤아리면 좋겠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