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구 ! 송아지 혈청" 바이오 연구진 호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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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대구 계명대 의대 의학유전공학 교실의 박종구 교수는 요즘 '젖동냥' 받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동물세포를 배양하는 데 사용해온 '우태혈청(자궁 속 송아지의 혈청)'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이다. 우태혈청이 없다면 8년 정도 지속하며 막바지 단계에 도달한 연구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기에 체면차릴 여유 없이 여기저기에 손을 벌리는 실정이다.

우태혈청은 소 조직의 일부로 연구용 및 의약품 제조용으로 사용된다. 사람이 배양하는 동물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우태혈청은 실험실이나 공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목이다.

지난해 말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발생하면서 정부가 미국산 우태혈청에 대해서도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동물세포를 이용하는 국내 생명과학 연구가 자칫하면 '올스톱'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태혈청의 국내시장은 70억원대. 전세계 시장크기는 2억5천만달러에 이른다. 이 중 미국산이 85%를 차지하고 호주와 뉴질랜드산이 15%를 이룬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우태혈청은 약 4개월분. 서울대 황우석 교수팀처럼 1년분의 우태혈청을 확보해 놓은 연구팀을 제외하고는 조만간 실험을 중단해야 한다. 백신이나 EPO(빈혈치료제)를 생산하는 공장라인도 가동을 멈춰야 한다. 앞으로 미국이 광우병으로부터의 안전지대라는 사실을 인정받으려면 면밀한 조사와 함께 6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최악의 사태를 무시할 수 없다. 연구주제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10년을 날려보낼 수도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아우성이다.

이에 따라 우태혈청의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미국 기프코사의 우태혈청을 판매하는 한국KDR 최상남 팀장은 "5백㎖ 한병에 평균 20만원 정도에 매매가 이뤄졌으나 수입금지 조치 이후 40만원 이상으로 치솟았다"며 "호주와 뉴질랜드산도 수요가 늘어 가격이 급등했지만 물량이 적어 국내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동물세포 연구자들은 우태혈청이 인체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우태혈청 생산용 소들은 엄격하게 청결한 상태에서 키워져 광우병 인자인 프리온 단백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우태혈청이 감염성이 없는 유제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분류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설사 우태혈청에 프리온 단백질이 있더라도 반드시 장갑을 착용하는 등의 안전지침을 마련하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의약품 제조용은 수입을 계속 금지하더라도 연구용만큼은 해제해 달라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

박종구 교수는 "미국으로 건너가 우태혈청의 밀수를 시도하는 교수들도 늘고 있다"며 "일본이나 대만.유럽에서는 미국산 우태혈청의 수입을 전혀 문제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의 수입금지 조치는 벼룩 한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우는 과민대응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과학기술부를 비롯한 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황우석 교수는 "과기부.보건복지부.농림부 등 관계부처 공무원들 및 검역과 바이오 전문가들이 모여 위험성을 면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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