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도에서 '압록강' '두만강'은 중국의 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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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가장 긴 강은 ‘얄루(Yalu)’다. 한국어로 ‘압록(Amnok)’으로 불린다…. 투먼강은 백두산에서 발원해 북동쪽으로 324마일을 흘러 ‘일본해’로 흐른다.”

미국의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인터넷판(www.britanica.com)에 수록된 내용이다. 압록강은 ‘얄루 리버’(Yalu River)로, 두만강은 ‘투먼 리버’(Tumen River)로 각각 수록돼 있다. Amnok-kang(압록강)과 Tuman-gang(두만강)이라는 표현은 ‘얄루’, ‘투먼’항목을 설명하는 내용 부분에서만 잠시 등장할 뿐이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자연유산에 중국식 이름이 붙여지고 중국식 표기가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다. 길이 803㎞로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인 압록강과 길이 547.8㎞의 두만강. 세계 각국에서 펴낸 한반도 지도에서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이름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에서 부르는 이름으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압록강을 ‘얄루장’(Yalu Jiang)이라고 부른다. 압록강(鴨綠江)을 중국어로 표기한 것이다. 두만강의 경우 ‘투먼장’(Tumen Jiang)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두만강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투먼장’은 두만강(豆滿江)을 중국어로 표기한 것이 아니다. 두만강의 중국식 발음은 ‘떠우만장’이기 때문이다. ‘투먼장’은 ‘도문강(圖們江)’을 중국식으로 읽은 것이다. 중국은 두만강을 명칭을 아예 바꿔 버린 것이다. ‘투먼’은 두만강 유역에 있는 중국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투먼’은 ‘두만(豆滿)’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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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러한 중국식 표기가 중국에서만 쓰이는 표현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압록강의 중국식 표기인‘얄루장’이나 두만강의 중국 측 호칭인‘투먼장’은 중국에서 제작한 지도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중국 지도는 물론 유엔(UN)을 비롯해 세계 각국이 제작한 한반도 영문지도에서도 중국식 표기가 통용되고 있다. 유엔이 제작한 북한 지도에는 압록강은 ‘얄루’, 두만강은 ‘투먼’으로 각각 나와 있다. 유엔 홈페이지 방문자들도 쉽게 열람할 수 있는 지도다. 반면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표현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Amnokgang’‘Dumangang’이라고 영문으로 제대로 표기한 지도는 건설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대한전도’ 영문판 정도다.

심지어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도 중국 쪽 호칭을 별 문제의식 없이 쓰고 있다. 2004년 6월에 유엔개발계획(UNDP) 한국사무소와 공동 발간한 ‘두만강 하구 접경 생물권보전지역 제안서’ 영문판에는 ‘Duman’이 아닌 ‘Tumen’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욱 놀라운 것은 관련 홈페이지 주소도 ‘http://tumen.unesco.or.kr’다. 유네스코 한국위는 최근 월간 소식지 ‘유네스코 뉴스’ 10월호에서 중국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가운데 하나로 백두산(白頭山)을 선정한 후 중국 쪽 호칭인 ‘창바이산(중국)’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압록강의 중국식 표기와 두만강의 중국 쪽 호칭은 이미 우리 일상 속 깊숙이 침투해 있다. ‘얄루’, ‘투먼’이라는 단어는 국내에서 시판되는 영한사전에도 등재돼 있다. 반면 압록강과 두만강이라는 단어는 영한사전에 없다. 지난해 10월 국내 한 경제신문은 ‘얄루’가 압록강의 중국식 표기인 줄 모르고 ‘중국 단동의 얄루강’이라는 사진 설명을 다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교육부에서 ‘한국 바로 알리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업 대상은 각국의 교과서에 국한돼 있다. 지도에까지는 미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접경 지역의 영문 표기 문제는 유엔(UN)지명표준화회의에서 다뤄진다. 지명 표기를 통일하기 위해 5년마다 열리는 회의다. 여기서는 각국별 지명표준화 정책과 외래 지명 문제, 접경 지역에 있는 지형에 대한 표기 문제 및 로마자 표기 문제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진다.

정부는 1992년 제6차 유엔지명표준화회의에서 ‘동해’의 영문 표기 문제를 공식 제기한 바 있다. 하지만 압록강과 두만강의 명칭을 문제 삼은 적은 없다. 외교통상부 유엔과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 제기해야 할 문제”라며 “우리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제3국의 입장에서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민간 외교사절단 반크(VANK)도 동해와 독도 문제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크 관계자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중국식 표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대표적인 산과 강의 이름이 중국식 호칭으로 국제적으로 통용될 경우 한반도의 대표적인 자연 유산들이 자칫 중국령(領), 즉 중국의 소유라는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백창기 연구원은 “백두산을 중국 ‘창바이산’으로, 압록강을 ‘얄루’로 표기한 지도나 간행물들은 국제적으로 해당 지역이 중국의 영토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지도 제작 기관을 상대로 압록강과 두만강 명칭을 알리고 적어도 함께 표기해달라고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출처= 2004년 유엔(UN)에서 펴낸 북한지도]

김용범 기자 jip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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