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후쿠다' 일본이 열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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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낮추고 머리를 조아린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사진) 일본 총리의 '난국 돌파용 처세술'을 두고 일본 국민 사이에 회자되는 '헤신테토(平身低頭)'라는 말의 뜻풀이다.

후쿠다는 야당의 격렬한 비판과 공격에도 맞서지 않고 되레 경청하는 것은 물론, 올바른 지적에는 "옳은 말씀"이라며 맞장구까지 쳐준다. 올해 일흔한 살의 후쿠다가 보여주는 이런 스타일이 일본 국민 사이에서 큰 화제를 부르고 있다. 강경하다 못해 독설까지 퍼붓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와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같은 '싸움닭 정권'을 7년가량 보다가 갑자기 180도 반대인 온건 대화형 지도자가 등장하자 그 신선함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다 정권이 출범했다 해서 일본이 떠안고 있는 연금개혁이나 소득격차 같은 유권자의 불만사항이 곧바로 해결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후쿠다가) 하면 된다"고 격려하는 시민이 많아졌다. 언론 여론조사에서도 후쿠다는 맞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민주당 대표를 제치고 총리 최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이런 평가는 협력과 대화를 중시하는 후쿠다의 정치철학이 크게 작용한다. 먼저 그에게는 정직.성실.겸손의 모습이 물씬 풍겨난다. 잘못을 지적받으면 숨기거나 합리화하려 하지 않고 바로 현장에서 사과한다. 그것도 머리를 숙여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로 정성껏 한다.

야당 의원에 대한 자세도 극진하다. 민주당이 도전적으로 질문해도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겠다. 열심히 노력하겠다"며 경청한다. 국회 답변에서 공무원 제도 개혁과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문에 손사래까지 쳐가며 거칠게 대응한 와타나베 요시미(渡邊喜美)행정개혁담당 장관은 따로 불려가 "야당 의원의 발언에 귀 기울이라"는 충고를 듣기도 했다.

당시 후쿠다는 "야당의 의견에도 겸허히 귀 기울이고 공손하게 대처해 가는 것이 방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베 때처럼 야당에 안하무인 격으로 대해서는 자민당이 힘을 모으는 게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장관들도 자신의 노선을 따라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오자와는 최근 자신의 이라크 파병 발언에 대해 반발하는 일부 의원에게 "탈당하라"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권교체를 앞두고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친절한 할아버지 같은 후쿠다의 발언과 처세술이 위기에 몰린 자민당을 구해낼 '우황청심환'이 되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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