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예술작품과제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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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영화나 비디오를 보다보면 간혹 당혹스러워 질 때가 많다.우리나라에서 상영할 때의 제목이나 비디오 출시 때의 제목이 원래의제목과 너무 판이한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국내에 수입되기 전부터 화제에 올라 고유명칭으로 굳어진 것을 제외하면 원제는 실종되고 이상 야릇한 제목으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발사의 남편』(佛)이『사랑한다면 이들처럼』으로 변하는것이나 『브라질』(美)이『여인의 음모』로 되는 식이다.이런 것이 어디 영화에서만 보이는 현상인가.무대에 올려진 연극 제목만으로는 누구의 작품인지,원제가 무엇인지 가늠하기 힘 들다.외국소설의 한국어판 제목도 출판사에서 임의로 전혀 엉뚱하게 붙이는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러는가.이유는 간단하다.영화나 연극의 기획자들이 관객 동원의 성패는 곧 제목이 좌우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일 게다.당연히 제목은 작품의 의미나 내용보다는 선정적이고 감각적인 방향으로 붙여지게 마련이다.한 문화 상품이 어떻게 소화되어야 하는가보다 우선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많이 팔고 보자는 식의 상업주의가 끼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제목 바꿔치기하는 풍토가 지극히당연시되고 있고,더욱더 가관인 것은 作名 잘하는 기획자가 탁월한 기획자로 대접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술 작품의 제목은 발표되는 순간 사회성을 획득하는 하나의 고유명사며,섣부르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제목을 바꾸어 버리는 행위가 자칫 작품의 의미를 왜곡하고 관객(혹은 독자)들의 다양한 讀法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음미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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