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매장 일요일 영업 허용 … 납품가·세일 규제도 풀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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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유럽의 석학인 자크 아탈리(65.사진)가 이끄는 '프랑스 성장촉진위원회'가 정부의 규제를 대폭 풀어 자율과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경제를 살리자는 제안을 했다.

15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고할 첫 보고서에서다. 이 위원회는 프랑스 경제의 재도약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7월부터 활동해 왔다.

아탈리 위원회는 그간 중소업자 보호를 이유로 경제 부문의 자율 경쟁을 억제해 온 '루아예-라파랭법'과 '갈랑법' 폐지를 제안했다.

루아예-라파랭법은 점포 면적 3000㎡, 매장 면적 1500㎡의 대형 유통매장을 도심에 짓지 못하게 하고, 영업시간 총량제를 적용해 주당 72시간 이상 영업하지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대형 유통업체들은 사실상 일요 영업을 할 수 없었다.

현재 파리의 경우 샹젤리제 등 7대 관광지역에 한해서만, 그것도 매장이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은 경우에만 일요 영업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이 폐지되면 대형매장이 일요일에도 문을 열 수 있다. 1년이 넘는 법정싸움 끝에 7월부터 문화공간으로 인정받아 일요 영업을 허가받은 루이뷔통의 샹젤리제 매장은 일요일 평균 6000명의 손님이 찾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경제장관 역시 이달 초 "가게 주인과 점원, 소비자가 모두 원하는 일요 영업을 정부가 막는 건 국가적인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갈랑법 폐지 제안은 업체 간 경쟁을 유도해 물가를 잡고 소비를 진작하려는 목적에서 나왔다. 현행 갈랑법은 제조업체가 상품의 공급가격을 유통업체에 따라 다르게 적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대형 할인매장에 공급하건 구멍가게에 팔건 납품가가 똑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탈리 위원회의 제안에 따라 대형 할인매장은 좀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공급받을 수 있고, 이는 다시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아탈리 보고서는 "이 법이 폐지되면 식품 등 생필품의 가격을 2~4% 떨어뜨리고 수천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위원회는 공급업자가 제공한 가격보다 싸게 판매할 수 없는 '덤핑금지'조항도 폐지하도록 권고했다. 세일에 대한 규제도 없애라고 제안했다. 현재 세일은 법적으로 한 번에 6주를 넘을 수 없으며, 재고나 중고상품만 팔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공급업자가 정한 가격 이하로 팔 수 없도록 한 '덤핑 금지' 조항도 폐지하도록 권고했다. 현재 대형 할인매장은 이 조항을 피하려고 가격을 자유롭게 매길 수 있는 자사 제조 제품을 '최저가격상품'으로 내놓고 싸게 팔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위원회에 전권을 부여하고 경제개혁안을 주문했다는 점에서 보고서 내용을 대부분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은 중소 상인과 노동단체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라가르드 장관은 이날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파리를 유럽 금융시장 허브로 키우는 계획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업의 주식시장 상장을 쉽게 한 유로넥스트 시장과 같이 파리 증시를 대폭 개편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영어로 영업하는 것을 장려하는 등의 대책도 조만간 공개하겠다고 설명했다. 라가르드 장관은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프랑스에 투자하기를 꺼리는 가장 큰 요인인 높은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계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창설했다고 덧붙였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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