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세계 LCD 패널의 10% 우리 회사 필름 쓰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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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근 상보 대표가 서울 양평동 본사 사옥 옥상에서 이 회사에서 생산한 LCD용 광학 필름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강욱현 기자

상보는 1977년부터 30년 동안 필름 소재를 개발·생산해 온 업체다. 이 회사 필름이 쓰이는 곳은 다양하다. 카세트와 비디오에 사용되는 미디어필름, 자동차나 건물의 자외·적외선을 차단해 주는 솔라필름(선팅필름), 지진 때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필름, 잉크젯 프린터에 쓰이는 포토인화지, 액정표시장치(LCD)용 광학필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필름의 만물상이다.

김상근(57) 대표는 카세트 테이프에 쓰이는 필름이 100% 일본제라는 말을 듣고 자극 받아 스스로의 표현대로 ‘겁도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잘나갔다. 79년 국내 최초로 오디오·비디오용 오버래핑(테이프 겉 포장지) 필름을 개발했다.

당시 전 세계 카세트 테이프 10개 중 7개에 상보의 필름이 쓰일 정도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테이프 미디어가 쇠퇴하면서 상보도 위기를 맞았다. 돌파구 없이는 앉아서 망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개발한 것이 창에 붙이는 안전필름으로 기사회생의 효자 노릇을 했다.

김 대표는 “창에 필름만 붙여도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해 에너지를 40%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강력한 제품은 38구경 총탄도 거뜬히 막는다”는 것. 그는 “안전과 에너지 절감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창문용 필름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회사 매출은 2005년 379억, 지난해 573억에 이어 올해 900여억원 돌파를 기대하는 등 근래 쑥쑥 크고 있다. 그 원동력은 LCD용 광학필름이다. 2000년대 초반 개발을 시작해 지난해 12월에는 백라이트유닛(BLU)에 들어가는 시트 중 최고의 기술력을 요하는 프리즘시트 개발에 성공했다. 김 대표는 “LCD에 들어가는 필름에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은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상보는 LG필립스LCD와 대만 CPT에 제품을 공급한다. 앞으로 대만 AUO, 삼성전자 등과도 거래를 트려는 참이다. 상보의 필름을 쓰는 LCD 패널은 전 세계 물량의 10%에 달한다.

이 회사는 LCD용 필름을 생산하기 전에 복합기용 필름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투자액이 70억원에 달했지만 실패했다. 그렇다고 잃기만 한 건 아니었다. 기술 개발 과정에서 얻은 노하우와 생산 설비를 활용해 LCD용 광학필름에 도전하게 된 것이다.

상보는 일본에서 기초소재를 수입했다. 후발주자면서도 금세 품질 좋은 필름을 생산하자 일본 필름 업체들이 은밀히 상보의 경영실태를 조사하기도 했다. 상보가 만만찮다고 판단한 일본 회사들이 상보에 기초소재를 팔지 못하도록 자국 관련 업계에 압력을 넣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김 대표는 “그때 기초소재 개발의 중요성을 새감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후 연구개발(R&D) 투자에 더욱 힘썼다. 연구소를 둘 세웠다. 상보가 필름 분야의 최고 기술력을 갖게 된 것도 이런 투자 덕분이다. 최근에는 LCD 백라이트 핵심 필름 4개를 한 장으로 만드는 복합시트 개발에 힘쓴다. 이것이 성공하면 LCD패널 생산 업체는 생산 과정이 간소화돼 인건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그만큼 상보의 제품 지배력이 커지는 셈이다.

문제는 인재 조달이다. “면접을 보기로 시간을 잡아 놓은 연구소 지원자들이 경기도 김포에 있는 우리 공장까지 오다가 ‘너무 멀다. 이렇게 먼 곳에선 일 못하겠다’고 되돌아가는 경우까지 있어요. 이럴 때면 중소기업의 애환을 톡톡히 느끼지요.”

상보는 이달 1일 코스닥에 상장했다. “우리는 미디어필름의 마지막 주자인 셈이에요. LCD용 광학필름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여기서도 마지막 주자가 되고 싶어요.”

임성은 이코노미스트 기자

※ 좀 더 상세한 기사는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LCD용 필름=LCD 패널에서는 백라이트유닛(BLU)에서 나오는 빛이 액정을 통과하면서 색상을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필름이 필요하다. 광원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시켜 앞으로 내보내는 반사시트, 빛을 고르게 분산해 주는 도광판 및 확산시트, 확산시트를 지나며 밝기가 떨어진 빛을 다시 모아 주는 역할을 하는 프리즘시트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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