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DVD 골라드립니다’- 캐쉬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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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14면

션 엘리스 감독의 단편영화 ‘캐쉬백’은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았고, 2005년 미국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단편영화 후보에까지 오른 바 있다. 주위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엘리스는 ‘캐쉬백’을 장편영화로 만들리라 결심했다. 그가 18분짜리 단편영화를 거의 그대로 가져온 다음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고 내레이션과 음악을 변경해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데는 고작 7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미술대학 졸업반인 벤은 2년 반 동안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 뒤 불면증에 시달리다 수퍼마켓의 야간근무에 지원한다. 지겨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간을 멈추고 갖가지 상상에 빠지던 벤은 같이 근무하는 샤론에게 애정을 느낀다. 엘리스는 이야기를 조금 늘리고 재미있는 장면을 붙이면 장편영화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순간 함정에 빠진 것 같다. 영화 내내 여성의 육체를 탐하는 남자의 욕망 때문에 어디선가 비릿한 향이 나는 듯하고, 공허한 상상의 연속에 단편영화의 아이디어는 빛을 잃는다.

하지만 엘리스 감독이 사진작가 출신이어서일까? 몇몇 멈춰선 순간은 탄성이 나올 정도다. 주인공 벤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멈춰진 1초’를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 엘리스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는 그런 순간으로 채워야 할 영화의 시간이 수천 초에 이른다는 걸 알아야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엘리스가 앞으로 아름다움을 발견할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뜻도 된다. 영화의 마지막, 눈송이 하나하나가 멈춘 밤 장면의 아름다움을 보면 그리 헛된 기대만은 아니겠다. 저예산 영화지만 DVD의 영상과 소리는 평균 이상이다. 단편을 장편으로 만드는 과정과 출연진의 인터뷰로 구성된 메이킹 필름(19분), 영화평론가 로저 이버트가 아카데미상 수상을 점쳤던 문제적 단편영화 ‘캐쉬백’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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