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표절곡은 '불후의 명곡' 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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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시대를 풍미했던 히트곡의 주인공과 함께 다시 불러보는 KBS 2TV ‘해피선데이-불후의 명곡’. 7일 방송에선 1990년대 중반 선풍을 일으켰던 댄스그룹 룰라가 나왔다.

이상민·김지현·채리나·고영욱·신정환 등 멤버들이 12년 만에 한데 모였다. 이들 덕분에 시청자들은 잠시나마 90년대 중반으로 시간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룰라의 재회가 감동적이었다는 반응도 많았다. 인터넷에서는 ‘불후의 명곡 룰라’가 인기 검색어로 떠올랐다. 하지만 한국 가요사에서 룰라는 흥겨운 노래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 동시에 실망을 안겨준 그룹이기도 했다.

룰라는 94년 레게 리듬을 가미한 ‘100일째 만남’으로 데뷔, 90년대 대표적인 혼성 댄스그룹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일부 곡들이 표절 논란에 휩싸이며 ‘표절 그룹’이란 오명도 써야 했다. 룰라는 95년 말 일본그룹 닌자의 ‘오마쓰리 닌자’를 베낀 ‘천상유애’를 발표했다가 표절 판정을 받으며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표절로 물의를 빚은 그룹이지만, 90년대 가요계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고려할 때 ‘불후의 명곡’ 코너에 나와도 큰 무리는 없다. 문제는 방송에서 불후의 명곡으로 뽑힌 곡이 또 다른 표절곡 ‘날개 잃은 천사’(95년)였다는 점이다.

‘엉덩이 춤’으로 기억되는 이 노래로 룰라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지만, 역시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자메이카 출신 가수 섀기의 ‘오 캐롤라이나’(93년)를 판박이 했기 때문이다. 곧 이어 터진 ‘천상유애’ 표절 파문 때문에 논란이 가라앉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이 곡 역시 표절곡으로 보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는 “표절 의혹 차원을 넘어 아예 표절곡”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도 “공식적인 표절 판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가요계와 평단에서는 이미 표절 낙인이 찍힌 노래”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날개 잃은 천사’는 네티즌 인기투표에서 룰라 최고의 곡으로 선정됐다. 표절곡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신중하지 못했던 점을 인정한다”고 해명했다.

‘불후의 명곡’은 노래에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그래서 곡을 선정할 때는 철저한 검증을 해야 한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을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아직도 가요계에 표절이 횡행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 기간방송이 표절곡에 ‘불후의 명곡’이라는 영예를 안기는 것은 진정 아이러니다. 시청자에게 ‘인기만 있으면 표절곡이어도 상관없다’는 그릇된 인식마저 심어줄 수 있다.

‘날개 잃은 천사’는 추억의 노래이자 당대의 히트곡으로 기록될 수는 있다. 하지만 ‘불후’라는 고매한 타이틀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방송사, 룰라 모두 국어사전부터 들춰볼 일이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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