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하는 회의, 있다? 없다?

중앙일보

입력


“띠리링”
“조상일 부장님 자리에 계시나요?”
“지금 회의 중이십니다.”
급한 용무로 조부장에게 전화를 건지 1시간 후,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회의 중이란 대답을 들었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부장급 직원의 경우 하루 중 회의에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팀별회의, 팀장회의, 부장급회의 등 참석해야 할 회의의 양이 보통이 아니다. 너무 잦은 회의 도 문제지만, 대부분의 회의가 ‘회의를 위한 회의’로 전락해 버린 경우도 많다. 아무 준비 없이 온 사람, 평론가적인 입장만 늘어놓는 사람….
결정된 사항은 하나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는 회의라면 과감히 바꿔야 한다. 성공하는 기업에는 잘 나가는 회의 방법이 따로 있다. 걸으면서 회의하는 장면, 상상이 되는가?

■ ‘캐논’의 스탠딩 회의
1999년, 캐논 일본 본사에 취임한 사카마키 히사시 사장이 가장 처음 한 일은 ‘회의문화’를 바꾸는 일이었다. 히사시 사장은 회의실 탁자 다리를 30㎝ 정도 높인 후, 모두 서서 회의할 것을 제안했다. 푹신한 의자에 오랜 시간 앉아 회의를 진행하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두뇌활동이 가장 활발할 때는 바로 서 있을 때다. 서서 회의를 하면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회의시간을 줄일 수 있고 효율도 높아진다.” 히사시 사장의 말이다.
실제로 스탠딩 회의가 시행되면서 캐논 내에서는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다리에 끊임없이 자극이 가기 때문에 회의 시간에 조는 사원들이 없어지게 됐다. 회의 중 점심식사도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물론 서서 먹는 게 원칙. 환경보호와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스탠딩 회의에 모든 페이퍼 자료 반입을 금했다. 페이퍼를 가지고 회의에 참석하면 자료만 줄줄 읽다 회의를 마치는 경우도 많고, 낙서를 하면서 회의에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보통 오전에 시작한 회의가 오후 5시까지 계속되기 일수였지만, 스탠딩 회의를 시작한 후부터 오후 1시면 충분히 회의를 마칠 수 있게 됐다.
한편 캐논 공장의 현장 직원들은 공장 안에서는 5m를 3.5초 이내에 걸어야 한다. 활발한 작업 리듬을 몸에 익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작업하는 손은 발의 스피드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사내에 ‘5m / 3.5초’의 보행 속도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지역이 있어서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보행 속도를 체크할 수 있다.

■ ‘HP’의 커피 브레이크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미국 HP의 임직원은 사장부터 일반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손에 커피를 들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아침 식사를 거른 사원들을 위해 한 쪽에는 도너츠도 준비돼 있다. 커피와 도너츠를 먹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 회의의 포인트는 모두가 서서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점이다. 딱딱한 회의 시간이라는 선입견 없이 서로 의견을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가운데 신선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HP의 유명한 잉크젯 프린터기가 바로 이 커피 브레이크에서 탄생했다.

■ ‘대한항공’의 스피드 회의
국내에서는 대한항공 임원진의 스탠딩 회의가 알려져 있다. 매일 아침 조양호 회장과 임원진들은 한 손에는 마실 거리를 들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스탠딩 회의를 한다. 내부에서 ‘ECM(최고집행위원회 미팅ㆍExecutive Committee Meeting)’으로 불리는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 회의로 매우 긴장되고 민감한 시간이다. 하지만 스탠딩 회의로 분위기를 바꾸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유연하고 편안한 분위기로 달라졌다. 이전에는 주로 날카롭게 지적을 많이 했던 조회장도 스탠딩 회의 이후, 임원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복잡한 서류 결재 없이 스탠딩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은 바로 집행되기 때문에 ‘스탠딩 회의’가 아니라 ‘스피드 회의’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 ‘보건복지부’의 햇살운동
보건복지부는 지난 4월부터 ‘햇살(HESHaL)운동’의 일환으로 회의문화를 대폭 변경하고 있다. 불필요한 회의를 지양하고 전화나 메신저를 활용하거나 스탠딩 회의를 활성화하고 있는 것. 스탠딩 회의 시간도 1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루 전에 의제를 공유하기 때문에 회의에서 결과를 끌어내기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게 된 것이다.

하루아침에도 순식간에 모든 게 변하는 세상이다. 관료주의적이고 구태의연한 회의를 진행하는 회사라면 소비자의 욕구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이 성공하는 기업들의 지론이다.
또, 회사 구성원의 개성 있는 발언도 중요하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적절한 시간, 공간, 분위기 등도 잘 갖춰야 한다. 최근 개방된 사고를 갖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회의를 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스탠딩 회의뿐만 아니라 야외에서 산행이나 도보를 즐기며 회의를 하거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사우나에서 대화를 나누는 기업도 소개되고 있다. 실제로 각 기업마다 회의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열린 회의’도 맹렬히 진행 중이다.
발상의 전환, 이것이 키워드다!

장치선 객원기자 charity19@joins.com
참고서적_ <바보들은 매일 회의만 한다> 니시무라 가츠미, <삼성처럼 회의하라> 김영한&김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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