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사위 처세법'이 가족의 행복 지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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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나는 널 친딸로 생각했는데….”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이렇게 얘기하며 눈물바람을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물론 이 말은 진실과 거리가 한참 있다. 며느리를 딸처럼, 시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 여길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이 말처럼 자주 쓰이면서도 참이 아닌 명제 중 하나가 ‘사위 사랑은 장모’가 아닌가 싶다. ‘사위가 오면 장모가 씨암탉을 잡지 않느냐’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모르는 얘기다. 사위가 손님처럼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에 씨암탉을 잡아 대접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친아들처럼 편했다면, 평소 먹던 반찬에 굴비나 한 마리 더 구웠을지 모를 일이다.

장모-사위 갈등은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가족문제다. 여성의 육아 편의를 우선하다 보니 처가 가까이 사는, 심지어는 처가에 들어가 사는 부부들 상당수가 이런 갈등을 경험한다. 우선 남자 입장을 보자. 극소수 ‘여우 같은’ 사위들은 맞벌이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 플러스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육아의 상당 부분을 처가에서 맡아주는 것이 정신·비용적 측면에서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도.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나라엔 이렇게 영악한 남자보다 ‘내가 겉보리 서 말이 없어서’라며 처가 신세 지는 것을 껄끄러워하는 곰 같은 남자가 더 많다. 이런 남성의 상식사전에는 ‘장모의 비위를 맞춰 집안의 화목을 도모한다’는 항목이 존재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장모로서는 뻣뻣한 사위가 영 밉상이다. 딸 고생이라도 시키는 것 같으면 미운 감정은 배가된다.

누군가로부터 들은 얘기다. 맞벌이를 하는 30대 부부가 전세금 2000만원을 급작스레 올려줘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들은 ‘내 집 마련할 때까지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한시적으로 처가살이를 시작했다. 장모도 “어차피 평소 딸이 출근하면 아이를 봐주는데, 합치면 어떠냐”며 흔쾌히 동의했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장모는 사위의 크고 작은 시중을 드는 딸의 일상을 보며 못마땅해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둘이 똑같이 일하고 들어오는데 왜 남자가 집안일을 거들지 않느냐” “하녀로 쓰라고 내 딸 준 거 아니다”라는 말을 내뱉기에 이르렀다.

장모-사위 싸움에 등 터지는 건 결국 여자다. 남편을 보면 ‘내가 시댁 식구들한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의 만분의 일만 하지’라는 생각에 울화가 치민다. 친정엄마를 보면 ‘며느리한테는 절대로 싫은 소리 안 하면서 사위한테는 저렇게 막 대하나’ 싶어 야속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면 부부관계, 모녀관계에 금 가기는 일도 아니다. 신(新)모계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사위에게는 장모를 대하는 처세법이 어느 정도 필요할 터다. 장모도 딸이 선택한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태도가 없으면 곤란하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건 아내의, 딸의, 그리고 가족의 행복이 아니겠는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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