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이 끝나자마자 정부가 후속 조치를 쏟아낼 태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다음 정부와의 관계에서 로드맵을 명료하게 만들어 합의 이행에 혼선이나 흐지부지되는 일이 없도록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범정부적 추진기획단을 총리 산하에 둔다고 밝혔다. 이를 시발로 관련 부처 고위 당국자의 기자회견이 연일 예고돼 있다.
남북 정상 간 합의가 나온 이상 정부가 후속 조치를 강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이번 합의가 제대로 실행된다면 남북 관계의 긴장 완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부산을 떨면서 추진될 일은 아니다.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 자명한 이번 합의의 성격상 임기가 4개월여 남은 이 정권에서 실질적 진전을 볼 사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국민의 관심이 저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겠는가.
정전체제 종식 협의, 서해 북방한계선에 관한 합의 내용은 그야말로 민감한 사안이다. 우리 내부의 공감대 형성은 물론 미·중 등 주요 관련국과의 협조도 필수적이다. 고속도로 개·보수 등 경제 지원에는 얼마만 한 비용이 들어갈지 계산이 안 나올 정도로 막막한 상태다. 상당수 국민은 ‘이번엔 얼마나 쏟아 부어야 하나’하고 탄식하고 있다. 한마디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각기의 합의 내용을 대한민국의 국익에 맞게 조율해 가는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합의는 북한과 협의 아래 수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차기 정권은 이번 합의에 아무런 변경을 가할 수 없게 못 박아버리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독선일 뿐이다. 또 성과를 과대 포장하려 든다면 그나마 있는 성과마저 훼손시킨다는 점을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노 대통령이 “(합의 이행에) 실질적으로 얼마만큼의 비용이 얼마만 한 기간에 소요될 것인지 명료하게 매듭짓자”고 밝혔다. 바른 인식이다. 이렇게 하나씩 차분하게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 나가는 것이 현 정권의 책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