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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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언론에 보도된 '수감된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30㎞를 걸어왔다'는 형제들의 말이 아버지의 강요탓으로 밝혀진 이후 아쉬움을 토로하는 독자들의 반응이 쇄도했다.

독자 대부분은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김군 형제"라며 "이들이 앞으로 바르게 살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또 중앙일보가 유일하게 심층취재를 해 진상을 먼저 밝혀낸 점에 대해 격려하는 독자들도 많았다.

경북 안동에 사는 김모씨는 지난달 30일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참, 저보다 딱한 사람이 있어 돈을 부친건데...그리고 서로 온정이 밀려 돈 후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직까지는 살만한 세상이다.그리고 작지만 좋은일 한 것 같아 뿌듯해하고 있었는데...오늘 이 기사보니 맥이 빠지는군요.. 씁쓸하고요.."

서울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모씨 역시 성금을 보낸 독자.그는 "한국에는 아직도 어려운 이웃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이 많다는 것이 확인된 것만 해도 살맛난다. 하지만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아버지 김씨의 거짓말 강요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 한씨라고 밝힌 한 독자는 "이미 온정의 손길도 많은데,슬픈 세상을 더 슬프게 만든건 아닌지...차라리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보내왔다.

Xyberian이라는 ID를 쓰는 독자는 "중앙일보는 잘못된 보도를 정확히 다시 바로 잡아 보도하는 점에서 칭찬할 만 하다"고 밝혔다.

REUENAL이라는 ID의 독자는 "온정의 손길이 허무하게 되어버렸읍니다. 언론매체의 오보때문에 빚어진 사건입니다. 너나 없이 어려운 사회분위기에 그래도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진실을 밝힌 중앙일보의 노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비록 진실이 밝혀져 빛바랜 온정 기사였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읍니까. 아버지처럼 되지 않도록 이 사회가 아이들을 이끌어줘야지요. 발로 쓰는 기사..모든 언론인들이 진력해야할 모토입니다."라고 격려했다.

이번 사건의 반전은 형제들의 뒷얘기를 쫓다 걸렸다. 영하 16도의 강추위 속에서 '30㎞를 걸어 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결국 확인 과정에서 아이들을 맡고 있는 안양보육원의 분위기가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뭔가 다른 속사정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순간 취재를 망설였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성금을 보낸 독자들을 다시 한번 실망시킬 수 도 있을텐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육원측도 그점 때문에 망설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대로 지나가면 결국 성금은 아이들을 이용한 김씨의 몫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내려졌고 보육원측은 사실을 털어놨다.

김군이 진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성금 전달식이 열리기 직전인 지난달 29일 오전 10시쯤.

형제들을 담당하고 있는 안양보육원 이정대 과장이 걸어온 경위를 재차 물었다.형제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뒤가 다른 말을 여러번 했기 때문이다. 결국 형제들은 "1번 버스를 타고 갔다"고 순순히 털어놨다.김군이 아버지로부터 거짓말을 강요당한 것은 지난달 16일 남부경찰서에서 김씨가 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던 때라고 한다.

자백 이후 바로 오전 10시 30분께 예정된 성금 전달식이 경찰.구청 관계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보육원에서 열렸다.

사실 확인에 나선 기자에게도 김군은 "평소 으름장을 놓는 아버지가 무서워 경찰서에서 '걸어왔다'고 진술했다"며 "거짓말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양보육원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다.모 스포츠신문과 방송에서는 형제들이 보육원을 탈출했다고 보도해 보육원 홈페이지에는 이를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안양보육원은 지난해 9월까지 9개월간 감옥에 간 김씨를 대신해 아이들을 키워 왔다.

보육원 이정대 과장은 "이번 사건이 보육원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으로 일부 언론이 보도하는 바람에 적은 보수에도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순박했던 아이들이 몇달간 김씨와 같이 살면서 많이 변한 것 같다"며 "김씨가 출소 한뒤 다시 아이들을 찾아가면 그동안 아이들의 삶이 또 엉망이 될까봐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보육원 관계자는 "김씨가 출소 이후 또다시 아이들을 돈벌이에 이용할 수도 있다"며 "제도적으로 양육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사회보육시설에서 키울 수 있게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육원측은 아이를 바르게 키울 능력이 없는 김씨 대신 아이를 돌봐주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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