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조건(화합의 교향악 울릴것인가: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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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존합의」틀에 살붙이는게 “첩경”/「기본합의서」 토대로 평화선언 가능성/핵해결엔 대북경수로 건설 지원 검토/고향방문단 재개·면회 설치도 중요 잣대
분단 반세기만에 이뤄지는 7·25 평양 정상회담 성공의 조건과 평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일부 국내 정치학자들은 이번 김영삼―김일성 정상회담에 대해『이미 절반은 성공한 회담』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말하자면 남북한 정상이 해방이후 최초로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커다란 성과일 뿐 아니라 실무선에서 풀기 힘든 핵·전쟁방지·경협·이산가족등 난마처럼 꼬인 문제들도 일단 정상이 만나 정치적 결단을 통해 해결할 방도를 찾을 수 있기 때문 이라는 것이다.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비관쪽보다는 낙관 쪽이 우세한것 같다.회담 성사의 의미가 웬만한 것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지닌 정치적·역사적 의미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우리 민족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지난 반세기 동안동족상잔과 반목으로 얼룩진 분단사를 청산하고,평화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역사적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지미 카터 전미대통령의 중재로 이번 정상회담이 이뤄지긴했지만 지난 44년간 줄곧「6·25의 전범」과 「미제의 꼭두각시」라고 쌍방을 비난해오던 양측 정상이 머리를 맞대고 민족의 장래와 평화정착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과거 냉전의 틀을 초월한 정치 행위라는 설명이 가능하다.둘째는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차지하는 의미다.
크게 봐서 이번 정상회담이 성사된 배경에는 역시 탈냉전이라는 세계사적인 흐름이 자리잡고 있다.
즉 지난 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탈냉전의 물줄기가 5년만에 동북아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50년대초 아무런 준비없이 동서냉전을 맞이해 6·25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 남북한 지도자들이 그로부터 44년뒤에 탈냉전이란 새로운 흐름을 맞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미대통령 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브레진스키도 『국제정치 차원에서 볼때 이번 정상회담은 세계냉전체제의 마지막 찌꺼기를 청산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정치적 상징성 못지않게「어떤 문제를 얼마만큼 해결했느냐」하는 실효성은 이번 정상회담의 성패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핵문제를 비롯,전쟁방지·이산가족·경협등 시급히 풀어야할 현안에 둘러싸인 남북한 지도자들이 너무 정상회담의 상징성에 치중한다면 그야말로 정상회담을 위한 정상회담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이용필교수는『정상회담을 성급한 환상을 갖고 한꺼번에 서두르면 안되지만 가시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남북 정상들이 이번 회담을 성공으로 이끌려면 기존의 남북비핵화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라는 2개 축을 중심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상회담의 성패는 입장이 다른 양측이 얼마나 합의를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합의된 것을 토대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양측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좀더 적극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한반도평화선언(가칭)등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또 현안인 핵문제에 대해서도 양측은 기존의 비핵화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은 물론 핵문제의 본 질적인 해결을 위해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대북경수로 건설 지원 문제등도 생각해 볼수 있다.
두 정상이 이산가족 문제와 관련,지난 80년대 중반에 중단된 고향방문단 재개나 판문점 면회소 설치도 이번 정상회담의 실효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의 성공 조건 못지않게 정상회담의 장애물 또한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남측이 필요 이상으로 김일성 전범논이나 북한인권문제등을 강조하고,북측도 통일전선 차원의「민족대단결」이나 주한미군 철수를 겨냥한「자주성 원칙」등을 고집할 경우 이번 회담은 자칫 남북 정상간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자리가 아닌 핵문제에 떼밀린 강요된 만남이 될 수도 있다.〈최원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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