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인정보가 돈에 팔리다니(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혀 모르는 기업에서 홍보물이 집으로 날아들 때 어째 이상하다 싶었다.아마 많은 사람이 그런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누구에게나 보내는 단순한 안내전단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소득수준과 하는 일,생활모습을 알고 보낸듯한 홍보물을 받아봤을 때의 당혹스러움 말이다.
정보화사회가 이런 모습이라면 정말 끔직하다.내가 모르는 새 남이 내 모습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는 사실,당연히 지켜질줄 알았던 개인정보가 돈에 팔린 공직자의 손에 의해 넘겨지고 있는 현실,이건 취조자만이 볼 수 있는 신문실에 앉혀진 거나 마찬가지다.
검찰은 서울시청·국세청 등 개인의 납세정보 등을 관리하고 있는 기관의 공무원들이 돈을 받고 정보대항사 등에 판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종합토지세 1백10만건,소득세 1백10만건,국민연금 가입자 자료 22만건,신용카드 가입자 50만건 등 모두 2백92만건이 돈에 팔려 유출됐다는 내용이다.관련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의 구색도 다양하고 유출규모도 엄청나다.각 개인의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은 물론 학력·카드 사용액·소득세 납부현황등이 담겨져 있는 자료들이다.
행정전산망에 담긴 이런 자료들이 마그네틱 테이프째 복사·매매되고 있다.정부·공공기관이 이 모양이니 금융기관·보험회사·학교·동창회·각종 협회 등 개인에 대한 신상기록을 갖고 있는 민간기관들의 정보관리 수준을 짐작키는 어렵지 않다.그래서 직업은 물론 직책·자가용보유 여부,심지어 결혼기념일까지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빼낸 자료를 꿰어맞추면 이른바 「고급정보」라는,공략대상 명단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그토록 신통한 우편물이 집으로 날아드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다.
정부는 몇해전 산하 각 기관에 개인정보 관리지침을 시달한 바있다.그런데도 지난 3월말 검찰은 불법 흥신업소와 심부름센터의 단속 결과 공무원이 개입된 개인정보의 유출사실을 적발했고,이번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도대체 국민의 기본권 인 사생활의 보장이 이 나라에서 과연 이뤄지고 있는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치권의 모습도 다를 게 없다.선거전을 위해 유권자의 성향분석에 필요한 불법적 정보 매수를 서슴지 않는다.국가의 정책을 집행하고,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식이 이모양이니 어차피 이윤동기의 기업을 나무란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싶을 지경이다.
정보화사회를 맞아「관리」되는 정보의 양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유출의 폐해는 더욱 심각해진다.올부터 겨우 시행되는「개인정보보호법」,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적용한 「전산망보급 확장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의 철저한 적용과 함께 정보관리기관에 대한 통제·감독기능의 보완과 내부단속 등 사회 전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