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혹파리 왜 박멸 못하나/강박광소장 한국화학연구소(과학세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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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나라 소나무숲 전역에 걸쳐 솔잎혹파리가 기승을 부려 피해가 막심하다.솔잎혹파리 문제가 첨단과학시대의 기술력으로 과연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라는 것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일 것이다.그러나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지 만은 않다.그 원인은 기초과학을 경시한데서 찾아야한다는 견해가 과학자들 간에 지배적이다.
솔잎혹파리는 모기약·파리약등 흔히 구할수 있는 살충제로 뿌리면 순식간에 죽는다고 한다.
그러면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느냐고 물을 것이다.그 이유는 살충제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이 극히 제한돼 있어 약은있어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사연 때문이다.
솔잎혹파리는 5월달 아카시아 꽃이 필 무렵 솔잎이 나뭇가지와 연결되는 부분에 알을 깐다.
알은 애벌레 시절을 솔잎 밑동 부분에 단단한 혹을 만들고 그속에 숨어 솔잎에 갈 영양분을 빨아먹고 살아간다.
따라서 5월이후 푸르러야 할 솔잎은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애벌레는 늦가을 소나무 밑에 떨어져 땅속에 숨어 겨울을 난다.번데기가 성충이 되어 땅위로 날아오를 때가 5월 어느 때이며,하루살이처럼 수많은 무리로 떼를 지어 길어야 이틀이내에 교미를 하고 알을 까고 일생을 마친다.
이와 같이 솔잎혹파리의 개별인생을 보면 대부분 약을 뿌릴수 있는 기간은 성충의 시기로 하루나 이틀에 불과하다.
험악한 산악지대의 그 넓은 범위에 걸쳐 성충이 나오는 정확한 시간을 포착하고 그때마다 상당히 넓은 지역 에 약을 살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불가능해 솔잎혹파리는 끝없이 번져간다.그런데 몇 그루의 소나무만 살리려면 성충이 날아오르는 때를 정확히 포착해 그때마다 약을 뿌리면 된다.
이와같이 약이 있어도 효과적인 사용방법이 궁한 상황에서는 기존의 농약기술은 무력할 수밖에 없어진다.이 경우 천적을 개발하거나 솔잎혹파리가 싫어하는 수종을 개발하는등 전혀 새로운 기법을 연구해 낼 수밖에 없다.
일반화된 기존의 방법이 아닌 전혀 새로운 기법을 창출해내려면 기초과학의 바탕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대량으로 자생할 수 있는 천적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려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수많은 곤충과 동물에 대한 기초과학적 연구가 장기간 에 걸쳐 추진되어 왔어야 한다.곤충연구소 하나 없는 현 상태에서 그러한 천적개발은 어렵다.돈이 되지 않는다고 기초과학 연구지원을 경시한데서 오는 업보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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