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그래, 그 책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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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스터 핍
로이드 존스 지음
김명신 옮김
대교베텔스만, 360쪽
8800원

아이의 목소리로 말하는 소설은 음흉하다. 순수한 눈을 빌려 세상의 무자비함을 강조하고, 아이가 겪는 고통을 전하며 읽는 이를 더 가슴 저미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만큼 더 큰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많은 이들이 이런 류의 소설을 펼친다.

이번에는 1990년대 초, 파푸아뉴기니의 부건빌 섬에 사는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 마틸다의 이야기다. 정부군과 반군간 내전으로 봉쇄령이 내려지고, 섬에는 남은 선생님이 없어 학교마저 문을 닫는 상황이다. 이 때 학교를 다시 연 새 선생님은 섬의 유일한 백인, 와츠씨다.

그는 원래 말수가 적고, 가끔 어릿광대 코를 달고 흑인 아내를 수레에 태우고 다니는 기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이들에게 “나한테는 지혜나 학식, 그 무엇도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너희와 나 사이에 있다”며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가 쓴 『위대한 유산』을 읽어주기 시작한다. 어리둥절해하던 아이들은 점차 ‘핍’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에게 빠져든다. 아이들은 핍의 도전과 사랑을 배우며, 아무리 어려운 현실에도 고매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체험한다.

그러나 이후 정부군이 들어오고, ‘핍’을 실존인물로 오해한 군인들은 그를 데려오라고 다그친다. 이 때문에 마틸다는 위기에 처한다.

소설은 집과 물건을 다 잃더라도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신의 목소리가 순수하게 살아 있는 자신 안의 공간”으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책에 심취한 사람은 집에 불이 난다 해도 벽지에 불길이 일 때까지 책에서 눈을 들지 않을 거야. 나에게 ‘위대한 유산’은 그런 책이란다. 그 책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지”라는 대목은 실용서가 판치는 우리네 독서 풍토에서 진정한 책 한 권의 의미를 생각케 한다.

저자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파푸아뉴기니 내전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07년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작가상을 수상했고, 10월 수상작이 결정되는 세계적 권위의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다. ‘맑은’ 책과 자신의 공간을 찾고 싶은 어른들에게 권한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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