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사 폐지 건의」 파문 확산/교개위 전격제안… 청와대 수용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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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성급한 안” 실시시기 비판/상당수 교사·학부모/“언젠가는 없애야 한다”
대입 본고사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교육개혁위원회의 대학입시제도 개선안은 전격발표후 청와대의 수용거부로 일단 보류됐지만 현행 대입제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본고사 폐지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교개위의 본고사 철폐론에 대해 일선교사와 학부모들은 『대입시를 몇달 앞두고 이런식으로 전격적인 발표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하면서도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키고 망국과외를 없애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국·영·수 중심의 본고사는 철폐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서울대·고료대 등 본고사를 채택한 세칭 명문대 입시관계자들은 『대학의 신입생선발 자율권을 확대키로 했던 당초 방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교개위의 건의에 크게 반발했다.
그중 연세대측은 『교육정상화를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본고사는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대조를 보였다.
◇일선고교=서울예일여고 이한주교사는 『본고사는 학생들간에 치열한 경쟁심·이기심을 유발하고 위화감을 조성하는 비교육적 효과를 가져왔다』며 『근본적으로 이번 건의는 파행으로 치닫는 교육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며 문제제기를 너무 갑작스럽게 해 충격을 주었으나 결국은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서울대진고 김윤선교사(33)는 『학생들의 입시 부담과 파행교육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본고사 폐지는 바람직하다』며 『그러나 입시를 불과 몇개월 남겨놓은 상태에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가며 제도변경을 하려는 것은 무리였다.고 말했다.
◇학부모=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수험생들을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고 과외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교개위의 조치를 환영했다.
학부모 서모씨(41·여)는 『그동안 변변치 못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두 자녀 과외비로 한달에 1백만원 가까이 지불했다』며 『본고사 폐지로 학부모들의 고열 과외열풍이 사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본고사 폐지방침이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원칙적으로 올바른 방향』이라며 환영했지만 입시를 불과 6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수험생들에 미칠 혼란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에 대해 시기선택에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서울대는 13일 오후 김종운 총장주재로 교무처장·기획실장 등 주요 보직교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본고사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별도 조치가 없는한 4월말 교육부의 승인까지 받은 현행 입시요강대로 본고사를 실시키로 방침을 정했다.
고려대 김준렬 교무처장은 『대학의 자율권 신장이라는 취지에서 실시한 본고사를 시행 1년만에 다시 백지화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고액과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과거 학력고사 시절에도 과외는 성행했으며 본고사도 학교수업만 충실히 받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연세대 김준석 입학관리처장은 『연세대는 중장기적으로 고교교육 정상화를 위해 본고사를 폐지한다는 방침을 이미 정해 놓은 상태』라고 밝히고 『이번 건의는 충분한 검토없이 과열과외를 막기위한 비상처방으로 제시돼 충격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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