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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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땅끝에 선 사람들 땅위의 사람들 사람들의땅(1) 길남의 어깨를 부여잡으며 춘식이도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그만하라니까 그런다.』 엎드려서 울고 있는 길남을 내려다보며 뒤에 서 있던 태수가 소리를 질렀다.
『내버려 둬라.헐만큼 허면 끝이 있겠지.』 중얼거리며 얼굴을돌리는 태수를 춘식이가 야속하다는듯 돌아본다.사람이 우는데,오죽하면 울까.저 놈은 속도 없나.어금니를 물면서 춘식이가 길남의 등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안다.네 맘 아니까 참아라.남의 눈도 있지 않니.니가 여기서 이러면 사람 모이고 뭐 좋을 게 있다고 이러나 모르겠다.』어깨로 흐느끼며 길남이 말했다.
『가라니까 그런다.돌아가란 말이다.나 좀 혼자 있게 해 줄 수 없니?』 태수가 또 중얼거렸다.
『물에 빠진 놈 보고,그냥 갈까.』 물에 빠진 놈이라는 말이길남의 마음을 긁어놓는다.
그랬다.죽어도,죽어 봤자 물에 빠져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그런 마음으로 산 게 며칠이었던가.그런데 이제 그 짓도,물에 빠져 죽는 거 마저도 못 하게 생겼다.
『못 간다.이제 가는 건 다 틀렸다 그말이다.』 태수도 춘식이도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어흐어흐 소리를 내며 길남이 다시 흐느낀다.다리를 잘랐단 말이다,다리를.병신이 따로 있나.그걸 두고 병신이라고 하지.명국이 아저씨가 이젠 병신이다 그말이다.
절름발이,목발 짚고 찔룩찔룩,이제 어찌 사냐 그말이다.
육신이라도 온전해야 거렁뱅이라도 하지.부모한테 받은 육신,덩거덩 다리 잘려 가지고,그 꼴을 해 가지고…그꼴을 해 가지고 고향엔들 가겠냐.누구 앞에 얼굴인들 내밀겠냐.
달래고 참고,그러다가 태수가 화를 낸다.
『죽은 놈도 있는데 너 이래도 되는 거냐?』 도망을 치려고 했던 사정을 그들이 알 리가 없다.그래도 그것이 희망이었다.꿈이었다.여기서 도망을 치면,바다를 건너 이 섬을 빠져나가면,그곳은 땅이었고 그만큼 조선과 가까워지는 것이었다.이제 그것마저없다.제생각에 겨워서 길남은 으 흐흐흐 소리를 질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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