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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대결,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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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어딜 가든 정권교체가 화제다. 이미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실망한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대통령까지 차지할 기세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도 오자와가 이끄는 민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제1당으로 발돋움했다. 장관들의 스캔들, 아베 총리의 미숙한 퇴진극에 국민은 넌더리를 치고 있어 다음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크다.

여야의 지형이 거꾸로이긴 하지만 우리도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기존 정권에 대한 염증만으로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비전과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를 둘러싸고 여야 간 대결이 격화하고 있다. 세계화 및 시장일변도의 정책 아래 확대돼 온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 논쟁의 초점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정책대결 내용은 아직까지 너무 빈곤하다. 이명박 후보가 경제라는 화두를 선점해 유리한 고지에 올라선 것을 의식한 통합신당의 예비 후보들은 다투어 ‘성장’과 ‘서민경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정동영 후보의 ‘항공우주 7대 강국 도약’과 ‘4000만 중산층 사회 건설’ 등이 그것이다. 좋은 얘기다. 문제는 이것이 어떤 시대정신에 입각해 있고 또 한나라당 후보와는 어떤 차별성을 갖는가다.

일본을 예로 들어 보자. 고이즈미-아베로 이어진 성장노선은 사회 곳곳에 양극화의 그늘을 만들었다. 이에 맞서 오자와가 내세운 비전이 ‘생활’이었다. 정책공약으로는 연금 외에 ‘고용을 지키고 양극화와 싸운다’를 내걸었다. 이를 위한 세부 정책으로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균등대우, 청년층의 취직 지원을 제시했다.

중소기업 지원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성장에 관한 정책은 없다. 야당으로서의 이런 차별성이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원래 보수색이 강했던 오자와의 정책이 ‘좌파적’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통합신당 후보보다 더 서민지향적인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통합신당 후보는 야당 후보를 흉내 내 성장을 외칠 것이 아니라 서민경제의 청사진을 분명히 그려내야 한다.

이명박 후보는 어떤가. ‘보수적’인 한나라당 후보가 ‘무상 보육’ 등 서민생활에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 후보가 승부수를 던져야 할 것은 성장정책이다. 국민의 기대도 그렇거니와 역사적으로도 이 후보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에 지속 가능한 성장 메커니즘을 뿌리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747’과 ‘한반도 대운하’가 이를 가능케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는 비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자원 투입을 늘리는 것과, 투입된 자원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것이 그것이다. 지금껏 우리는 주로 전자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선진국일수록 후자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자민당의 성장정책은 향후 10년간 매년 2.2%의 실질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전략이다. 목표 성장률의 3분의 2를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 서비스산업의 생산성 향상, ‘인재의 질 향상’ 등 질적 성장으로 달성한다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다.

우리와 소득 수준이 비슷했던 1980년대,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4.4% 정도였다. 이 후보가 이를 훌쩍 뛰어넘는 7%의 성장을 공약으로 내건 것 자체는 좋다고 치자. 문제는 이 후보의 전략이 ‘규제 완화에 의한 투자 촉진’ ‘대운하 건설’ 등 자원의 양적 투입이라는 기존의 한계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발전단계에서는 아직 이것이 필요하다고 강변하지 말라. 80년대 일본은 이미 성장률의 절반을 투입 자원의 양이 아닌 질의 향상과 그 생산성 향상으로 달성하고 있었다.

선진국 문턱에 선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생산성 향상에 의한 성장이다. 이런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고 이 후보가 끝내 ‘대운하’를 고집한다면 이는 지지율 저하의 부메랑이 돼 스스로를 덮칠 것이다.

우종원 일본국립 사이타마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