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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예술을 키우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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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하지만 만족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의 설익은 기량 때문은 아니었다. 과연 내가 부모 노릇 잘하고 있나,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전문 국악인도 어려워한다는 ‘상영산’과 ‘청성곡’을 연주하는 ‘고사리 손’에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특히 연휴 직전의 씁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21일 서울교육대학에서는 제44회 전국아동음악경연대회가 열렸다. 국악 개인부문에 가야금 3명, 단소 21명이 참가했다. 흥미로운 건 초등학생 21명이 마치 약속이라 한 듯이 거의 똑같은 음악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특별한 지정곡이 없었음에도 아이들 대부분은 예선·본선곡으로 ‘상영산’ ‘청성곡’ 등을 골랐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세 번 이상 들으면 물리는데, 엇비슷한 가락을 앵무새처럼 불어대는 아이들이 무척 측은해 보였다. 저 꼬마들이 지금 연주하고 있는 음악을 얼마나 이해할까, 아니 얼마나 좋아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영산’과 ‘청성곡’은 고난도 음악이다. ‘상영산’은 ‘영산회상(靈山會相·부처가 설법하던 영산회의 깨달음을 노래한 악곡)’이라는 9개 모음곡 형식의 첫째 곡이다. 명상음악의 극치로 꼽히곤 한다. 음악이 매우 느리면서도 장중하다. ‘높은 소리의 음악’이란 뜻의 ‘청성곡’ 또한 정악(正樂) 독주곡의 백미다. 먼먼 옛날, 중국 ‘요순(堯舜)시대’와 같은 태평성대를 노래한다는 의미에서 ‘요천순일지곡(堯天舜日之曲)’으로도 불린다. 주로 높은 음역에서 맑은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고도의 기교가 필요하다.

그날 심사위원장을 맡은 서울교대 이동남 교수의 한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여러분 수고했어요. 음악대회에선 선곡이 중요해요. 너무 어려운 곡을 가지고 나오지 마세요. 비교적 쉬운, 타령이나 민요도 많잖아요.”

반면 현실은 180도 달랐다. 단소 지도교사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왜 이리 천편일률적으로 힘겨운 곡을 가지고 나왔을까요.” 대답이 명쾌했다. “쉬운 곡을 연주하면 상을 받지 못하거든요. 떨어질 게 분명한데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부모와 교사 모두 입상 욕심 때문에 아이들에게 음악의 기쁨보다 음악의 기술만을 강요해온 건 아닌지 사뭇 안타까웠다. 수학공부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쉬운 문제는 간단히 풀 수 있다고 하지만 즐거움이 최고인 음악에서도 그 원칙이 통할지 의문이다. 이는 국악만의 고질(痼疾)이 아닐 것이다. 모차르트를 즐기지 못하면서도 브람스와 쇼팽의 악보에 손가락을 혹사당하는 아이들이 숱할 터다. 아그리파 데생에 에너지를 쏟는 미술교육은 또 어떤가.

한국 사회는 최근 두 달여 신정아 사태에서 ‘술(術)’의 폐해를 지겹도록 확인했다. 미술의 ‘미(美)’는 망각하고 ‘술’만 앞세운 ‘껍데기 예술’의 부작용을 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웠다. 우리 아이들을 진정한 ‘예술적 동지’로 키우려면 부모와 교사부터 먼저 각성할 일이다. 어린이들을 절대 ‘예술의 포로’로 만들어선 안 된다. 공자의 그 유명한,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며,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라는 말이 가슴을 때린 추석 연휴였다.

박정호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