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사라진 걸작은 어디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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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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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할 지음,
이미선 옮김,
예담, 364쪽, 1만원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화가 카라바조(1571~1610). 창녀와 빈민 등 ‘없는 사람들’을 모델로 예수와 성자가 등장하는 종교화를 그려 ‘화단의 이단아’로 불린 인물이다. “죄악의 공포와 추악함, 더러움에 매달려 먹고 살았다”는 혹평까지 받았다.

그가 구사한 명암법은 많은 후대의 화가들이 모방했을 정도로 강렬하고 독특했다. 생전에 별로 높이 평가 받지 못했던 그는 1951년 밀라노에서 열린 전시회를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17세기 이탈리아 미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주제로 논문을 썼고, 미술관들은 앞다퉈 전시회를 기획했다. 오죽하면 ‘카라바조 병(病)’이라는 말도 유행했을까.

2005년 뉴욕 타임스가 논픽션 부문 최우수도서로 선정한 이 책은 이 천재 화가의 사라진 걸작 ‘그리스도의 체포’를 찾아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려나간다. ‘그리스도의 체포’는 200년이 넘게 자취를 감춰 카라바조 병 환자들의 애를 태웠던 작품. 로마대학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프란체스카와 로라는 우연히 한 저택 지하에 있는 고문서 보관소의 존재를 알게 된다. 어렵사리 접근한 그 곳에서 이들은 사라진 걸작의 행방을 알려주는 단서를 찾아낸다.

한편 아일랜드 국립 미술관의 복원전문가 베네데티 세르조는 복원 의뢰를 받고 예수회 사택에서 문제의 그림과 마주친다. 늘 전문가가 아닌 기술자로 대우받는 현실에 불만을 품었던 그는 그림 복원 작업을 하는 동시에, 이 그림이 카라바조의 진품임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읽으면 팩션인줄 착각할 정도로 미스터리 기법이 능숙하게 구사돼 있다. 진짜냐, 가짜냐를 놓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전개가 지루할 틈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제 인물이며, 실명이다. 지은이 조너선 할은 집필 전 이들 전원을 인터뷰했는데, 이를 위해 이탈리어를 배웠을 정도로 프로다웠다. 그림 복원과 수수께끼 추적을 종횡으로 엮어 서양미술사의 풍성하고도 비밀스런 한 페이지를 엿보게 한 솜씨가 여간 아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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