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현상 배척한 판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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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가이익을 위해 시행하는 공공사업은 지역주민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은 요즘 급격히 대두하고 있는 지역이기주의에 제동을 거는 의미있는 판례다. 서울고법의 이 판결은 최근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친 핵폐기물처리장 건설계획을 비롯,비슷한 경우에 부닥칠지도 모를 사회간접자본 건설계획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규모 건설공사에 님비(not in my backyard)적인 트집을 잡는 것은 용인되지 않는다는 선례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판결은 판교∼일산간의 여러군을 거치는 국가적 공사에서 특정지역 주민의 반대는 안된다는 뜻이지 일정지역에 국한된 지방자치단체의 공사에까지 주민동의가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같은 판결에서 시장·군수가 특정지역개발을 위한 공사를 벌일 때는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이익을 위한 공사라도 실제로 한 지역에만 해당되는 건설공사일 경우 이런 판례가 적용될 수 있을까. 한 지역에 국한된 공사라도 지방이익이 아닌 국가이익을 위해 국가가 시행하는 것이라면 주민동의를 필요치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이 판례가 대법원 판례로 정립되면 대규모 건설공사의 발목을 잡는 님비현상은 상당부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그래야 된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다.
양산에 이어 울진에서도 주민반대에 부닥쳐 좌절된 핵폐기물 처리장의 경우 그 건설의 시급성은 매우 절박하다. 97년에는 저장고가 포화를 이룰 전망이라 지금 건설에 착수해도 이미 때가 늦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주민의 반대에 부닥치면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등의 둔사를 내놓으며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몇년후 핵폐기물 처리를 둘러싸고 중대문제가 발생할 경우 오늘의 당로자들이 모두 책임져야 할 문제다.
경부고속철도나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같은 메가톤급 건설공사에서도 님비현상의 저항에 부닥칠 수 있다. 이번 판례가 주민들의 무리한 제동가능성을 줄이기는 하겠지만 관료들의 무기력한 행정력까지 고양해주지는 못한다. 원전폐기물 저장고의 경우 그 안전과 건설 필요성을 적극 홍보함으로써 주민의 반발을 사전에 누그러뜨리는 적극적 대처가 필요하다.
국가적 공사라 하더라도 그로 인해 주민들이 볼 피해에 대한 보상이나 사후대책에는 만전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판례도 주민들의 피해를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토지수용이나 환경피해에 대한 보상규정은 엄연히 살아있다. 주민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졸속추진으로 반발을 사는 것도 문제다. 국가공사의 필요성에 걸맞은 추진능력과 설득력이 갖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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