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의바둑산책>요다 9단의 귀마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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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의 曺薰鉉9단과 일본의 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9단이 5번승부로 겨루고 있는 동양증권배 결승이 棋街에 무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曺.요다 두 사람의 결승진출이 확정되었을 즈음 필자가 본란을통해『요다는 자신이「진로배세계최강전」에서 질풍노도와 같은 5연승을 올려주었음에도 우승을 놓친 팀 동료들에 대한 실망감과 曺9단과의 대국때 우세하게 잘 나가다 지나친 손바 람이 화근이 돼 역전타를 얻어 맞는등 피눈물나게 당한 끝에「시간초과 실격패」까지 겪음으로써 심리적 타격이 컸다.바로 이점이 그를 괴롭힐것이다』고 예견했었다.
과연 曺9단과의 결승에 임하는 요다9단은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제2국때 상대의 엄살이 듣기싫다는 이유로 귀마개를하고 나온 것이 그 증거다.그러나 귀마개가 어색해 자꾸만 만지작거리다 못견뎌 급기야(오후에) 도로 빼 버렸으 니 오히려 쓸데없는 신경만 더 쓴 꼴이었다.
물론『曺9단의 엄살이 얼마나 심했으면 귀마개까지 했겠느냐』고지적하는 분도 많지만 상대의 엄살 따위에 그토록 전전긍긍해서는결코 이기기 어려운 법이다.따라서 요다의 2패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재작년 李昌鎬.린하이펑(林海峯)의 동양증권배 결승을 TV로 지켜보던 바둑팬들의 항의가 쇄도했었다.『林9단의 부채소리가 시끄럽다』『아들 또래인 어린 소년을 상대로 대국하면서 어쩌면 그럴수 있느냐』는 내용이었다.그러나 정작 李6단은『 盤上에 몰입하노라면 전혀 못느낍니다』고 질문에 답했던 기억이 난다.
「바둑을 이길때는 옆에서 총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이런 저런 소음에 신경쓰이는 날은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고 봐야하며 그런 날은 바둑을 지는 날이다.
한국의 대표적 기사들이「요다 콤플렉스」「요다 공포증」이라고까지는 말할수 없지만 요다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잔뜩 경직되었던 것만은 부인하기 어려우리라.평상심을 잃고,자신의 바둑을 두지 못했으니 자멸할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曺9단은 다르다.그가 요다를 보는 시각은 한결 여유가있다.바둑의 감각이 날카롭고,각종 승부를 즐기는 점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과 흡사하다며 대견스러워 한다.
요다는 曺에 비해 아직 여리다는 느낌이다.曺가 큰 바다에서 모진 풍랑과 싸우며 고기를 잡아온 어부라면 요다는 강에서만 지내온 어부라고나 할까.팔뚝의 근육이 다르고,이마의 주름살이 다르다.이는 결코 팔이 안으로 굽어 하는 얘기가 아 니다.어디까지나 두 사람의 업적을 엄밀히 비교.분석한데서 나온 지극히 과학적인 판단임을 강조하고 싶다.
曺薰鉉이 누구인가.왕년에 천하를 세번씩이나 통일하고,「제1기應氏盃」를 거머쥐었던「세계바둑황제」가 아닌가.비록 국내에선 제자에게 곤욕을 치를망정 무섭게 腕力을 휘두르는 그의 바둑은 세계무대에선 여전히 공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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