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읍 독곶리 주민 “집·축사만 남아 … 어찌 사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에쓰오일이 대산공장 신설 유보를 발표한 지 3개월여가 지난 18일 독곶리 주민들이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논·밭을 둘러보며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서산=프리랜서 김성태]

“농지를 다 팔고 집과 축사만 남았는데 이제 와서 공장을 안 짓겠다면 농사꾼인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6월 12일 ㈜에쓰오일이 제 2공장 건설 중단을 발표한 지 석 달여가 지났지만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주민들은 아직도 허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18일 오전 찾은 에쓰오일 공장 신설 부지 113만8500㎡(34만5000평) 중 1/3 정도의 논·밭에는 농작물 대신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대기업이 공장을 짓는다는 소식에 마을 전체가 잔치 분위기였다. ‘공사 유보’라는 일방적인 통보에 망연자실, 일부 주민들은 실의에 빠져있다.

◆실의에 빠진 독곶리 주민=대산읍 독곶리 이용주 이장은 “사업대상지 주민 120여 가구 가운데 80% 이상이 농지에 대한 보상을 마쳤고 집과 축사, 비닐하우스에 대한 보상협의만 기다리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주민들은 축사, 비닐하우스까지 다 팔고 인근 삼길포 지역으로 이주해 농사를 계속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중간에 에쓰오일 공장 건설이 중단되면서 집과 축사 등은 팔지 못했다. 때문에 땅만 판 돈으로는 삼길포 지역으로 이주해 땅과 집을 살 수 없다. 그래서 이주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땅을 다시 되살수도 없다. 이 지역이 산업단지로 지정돼 땅을 사더라도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에쓰오일 주민대책위 김종태 간사는 “에쓰오일이 증설을 하지 않더라도 서운할 것은 없다”며 “하지만 주민들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사업을 중단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분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에쓰오일 측이 공사 유보의 이유로 ‘주민들과의 보상 마찰’을 꼽았기 때문이다. 얼굴을 맞대고 제대로 된 협상 한 번 한적도 없는데 자신들이 과도한 보상금을 요구해 공사가 중단됐다는 소문이 떠돌면서 마음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공사가 중단되면서 주민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주민들이 에쓰오일에 매각한 부지에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이 부지에 농사를 짓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하지만 평생을 농사일만 해오던 주민들에게는 ‘농사’ 이외에는 별다른 생계수단이 없어 불법임을 알면서도 농사를 짓고 있다.

◆중간에서 난감한 서산시=공사 중단 결정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서산시다. 서산시는 7월 10일 에쓰오일 측의 사업 잠정 중단 결정 이후 비상대책반을 편성해 에쓰오일-주민 간의 중재에 나서는 한편 유상곤 시장이 본사를 직접 방문, 사업 재개 등을 요청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주민들의 무리한 요구에 발목이 잡혀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에쓰오일 측의 답변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서산시는 궁여지책으로 사업 대상지였던 독곶리 일원 125만3671㎡를 자연녹지에서 전용공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을 수립, 지난 7일 시의회의 의견을 청취했고 다음 달 초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충남도에 변경안을 상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전용공업지역으로 묶는 것은 에쓰오일이 공장을 설립한다는 조건을 충족할 때 가능한 것”이라며 “사업재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용도변경을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민들이 반발해 서산시의 고민이 가중되고 있다.

반면 도시계획 변경과 관련, 에쓰오일 측은 “서산시로부터 공식적으로 공장추진 제의를 받지 못해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단계”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서산시가 도시관리계획변경을 추진해가면서까지 에쓰오일 공장재개를 지원하고 나서 결실을 맺을 지 주목된다. 서산시는 우선 변경안이 시의회의 의견 청취를 마쳤고 다음 달 도시계획위원회의 심의, 충남도 의결을 거친 뒤 에쓰오일과 재협상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서산시 지역경제과 관계자는 “도시계획 변경안이 충남도 의결을 통과하면 에쓰오일이 곧바로 공장설립을 재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에쓰오일 측이 사업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닌 만큼 역량을 다해 재 추진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ADVERTISEMENT
ADVERTISEMENT